할아버지의 임종 후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할아버지는 20년 11월의 새벽, 폐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세 식구가 살던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의 병원은 차로 10분 거리였는데, 나와 남편은 내 방 침대에 쪼그려 쪽잠을 자다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차 시동을 걸었다. 가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 담당 주치의 선생님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미리 전화로 언질을 하셨고, 회사 화장실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그럼 며칠이나 남은 건가요?'라고 묻던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어쩐지 남의 얘기를 듣는 양 실감이 안 났는데, 할머니의 전화를 받으니 '아, 이제 진짜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구나.' 싶었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고, 남편의 손을 잡고 꼭 행복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눈을 감으셨다. 나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짙은 슬픔에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으나 할머니는 내게 울지 말라하셨다. 왜냐하면 이후에 할아버지를 장례식장까지 무사히 모셔야 하는 것도 내 임무였으니까. 그래서 눈물도 낯선 상황과 함께 삼켜버렸다.
오전 2시 38분 OOO님 사망하셨습니다.
얼마 후 많이 피곤해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한 후 사망선고를 내렸다. 엄청 극적이고 괴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한 상황이었다. 간호사분들이 할아버지에게 달려 있던 링거와 산소호흡기를 떼어냈다. 나는 흰 천으로 전신이 드리워진 할아버지를 그저 바라보았는데,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병동 카운터에서 사망진단서를 출력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담당 간호사는 이 서류가 꼭 있어야 한다고 내게 일러주었다.
곧이어 고인을 모시는 앰뷸런스 기사님이 도착하셨다. 기사님은 능숙한 자세로 들것에 할아버지를 옮기고 안전벨트를 채웠다. 흰 천은 머리끝까지 덮여있었고, 때문에 나는 방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면서도 할아버지가 답답할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스타렉스 앰뷸런스 뒷좌석에 할아버지를 태운 이동장치를 고정시켰다. 나는 앰뷸런스 기사님 옆자리에 탈 것을 자처했다. 새벽의 도로는 한적했고, 말 한마디 없이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30분 정도 지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도착 한 뒤 할아버지는 안치실(영안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상주명을 적는 란에 내 이름을 썼다.
나는 할아버지를 영안실로 모신 후 상주명에 내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지금 이 시간 이후로부터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는 일을 전부 책임지는 사람은 '나'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꼭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다짐했다. 20대 후반의 어린 나에겐 생소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의 손에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맡기는 것이 싫었다. 나는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있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작중 '이지안'역할을 맡은 아이유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는 소녀가장이다. 의지할 곳 없는 그녀에게 할머니는 유일한 가족이었는데, 아픈 할머니를 결국 보내드리는 장면에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지안의 마음에 내 모습이 투영되었을 수도. 나는 드라마 속 그녀만큼 불행한 삶도 아니었고 평범했지만,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으니까. 그런 부분을 아이유 님이 절절하게 표현하신 것 같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사실은 너무 괴롭다. 하지만 상주는 슬퍼할 시간이 별로 없다. 여러 가지 행정적인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10장쯤 뽑아, 혹시 잃어버릴까 봐 서류를 가슴에 품고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그 후에도 길고 복잡한 장례 절차가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