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성장 Feb 22. 2022

나는 '영 케어러(Young Carer)'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돌보는 손녀의 이야기


"자녀분은 어디 계시고,
손주분이 오셨어요?"


뉴스에서 '영 케어러'라는 단어를 보았다. 아픈 부모나 조부모를 부양하는 청년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하는데, 문득 나의 2020년 겨울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병동에서 투병하다 돌아가신 그때였다. 그 겨울에 내게 아버지와도 같은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는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 도처에 홀로 남으신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그래서 영 케어러에 대한, 젊은 부양자들의 기사를 보았을 때 저절로 클릭을 하게 되었을 수도.



그동안 '영케어러'라는 단어로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청년들을 지칭하는 말은 없었던 것 같아 새삼스러웠다. 나는 언제나 내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고, "자녀는 어디에 있고, 손주가 왔느냐"라는 질문을 꽤 자주 받았다. 친구들도 내 고민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당연했다. 자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그 자녀의 자녀. 내가 봐도 내 상황이 너무 복잡했으니까.





나는 3살에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친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으레 편부모 가정이 그렇듯 우리 엄마도 하루 종일 일만 하셨다. 엄마는 학구열이 치열한 도시의 학원 강사였는데, 그렇게 내내 일하고 과외까지 병행하며 내가 아버지 없이 자란 티가 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셨다. 세월이 지나 엄마는 재혼을 하셨고, 나는 계속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기를 원했기에 부모님의 정서적 빈자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신해주셨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각별할 수밖에 없던 나는 자연스럽게 나보다 훨씬 늙고 약해져 가는 조부모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부모가 늙어가는 것보다, 부모의 부모가 늙어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나는 때때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의 흔적을 할아버지에게서 찾고는 했다. 그리고 조부모님은 나에게서 아들의 흔적을 찾았다. 나는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의 늦은 자식과도 같았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일한 딸인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2020년 2월, 기침을 자주 하시던 할아버지가 폐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당시에 타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어 전화로 비보를 접했다.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다른 할아버지보다 젊은 축에 속했던 우리 할아버지에게 폐암이라니. 원룸 오피스텔에서 동그마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혼자 엉엉 울었다.



나는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정신적인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점점 쇠약해지셨다. 나는 자주 병동의 간병인 침상에서 잠을 자고 회사로 출근하곤 했다. 할아버지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상, 나는 할머니와 번갈아 간병을 하며 할아버지의 생명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매일 목격했다. 그것은 내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돌아가시던 그 순간까지 보호자는 '나' 였으며, 고인을 확인하러 대표로 들어가는 사람도 나였다. 장례식의 모든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나였고, 장지와 묘지를 정하는 것도 나였다. 너무나 많은 결정의 순간들로 늘 긴장했고 늘 숨이 막혔다. 나도 준비가 안되어있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인데. 곁에 지금은 남편이 된 반려자가 없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언제나 내 상황이 부끄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남들이 나를 판단하는 게 부끄러웠다. 사실 부끄러울 일도 아닌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길러지고, 아버지를 사고로 여의었다는 말만 하면 나를 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달라짐을 느꼈다. 불쌍한 아이. 실제로 나는 그렇게 경제적, 정서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며 자라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의 시선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을 갖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그러나 이제 허망하게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서야 내 이야기를 당당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슬프고도 복잡한 감정이다.



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은 늙음과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영 케어러'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 사회적 약자로 비추어져서일까? 사실 지금 현실에, 나와 같은 2030들이 나이 든 노인을 부양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느껴진다. 실제로도 많은 복지의 사각지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끝까지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은 마땅히 보상받아야 한다. 당장 세상의 시선과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영케어러들이 좀 더 따뜻한 손길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길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