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최근 몇 년간은 정신이 없었다. 학부에서 배웠던 것들은 회사에서 크게 소용이 없거나, 쓸모가 있다 하더라도 업무를 위해 새롭게 다시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업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학에서의 공부와 회사에서의 업무를 같이 선상에 놓아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그때는 약간의 인지부조화도 있었다. 오래간만에 학교에 가서 동기나 후배들을 만나면 고학번이라 웬만하면 다들 선배라고 부르는데, 회사에 가면 나는 막내고 모두가 선배였다. 어른이 되었다 싶었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된 기분도 함께 느꼈다. 때문에 짐짓 점잖게 굴다가도 다시 누그러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그때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런 면에서 좀 더 당당해도 되었을 것 같다. 사회초년생 때는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당연히 거쳐야 하는 시기였으니까. 나는 평소에도 세상사 전반에 궁금한 것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이렇듯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참 기꺼웠다. 물론, 앞서 말한 ‘어른이 되었다’ 싶은 감각 때문에 저어하던 적도 있었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그야말로 고삐가 풀렸다. 그 시절 내 질문들은 말도 안 되는 것도 있었고 내게 필요한 것도 있었고 하나마나한 것도 있었겠으나, 그 하찮은 질문들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적절한 답을 주는 사람들을 만났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더욱더 많이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 또 질문할걸 하는 것뿐이다.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기는 곧 끝난다. 사회초년생 때야 할 수 있다 치더라도 몇 년이 지나고 직급이 생기고 나서도 기본적인 질문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질문 자체는 유효하다.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아는 한 답을 해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게 해줄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아님 말고). 그러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파트가 지났으니 질문의 질 또한 달라져야 한다곤 생각한다.
스스로도 답을 내렸으나, 그것을 더 날카롭게 연마할 수 있을 현명한 질문, 이라고 쓰고 보니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무 질문이나 즉흥적으로 막 해버린다면 솔직히 ‘핑프’ 취급이나 받을 게 뻔하다. ‘그걸 질문이라고 해?’ 하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연차가 쌓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회사에 질문을 할 선배가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동기들이나 회사 밖의 선배들에게 있는 인맥 없는 인맥을 동원하여 조언을 구하기는 했지만 ‘내 일’까지 그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들 어떻게 이런 시기를 씩씩하게 지나왔을까? 종종 생각한다. 지금도 똑부러진 타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질문이 아니므로 내 머릿속에서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이다. 나는 한동안 이 명제를 끌어안고 살았다. 그러나 정해진 답은 없었다. 나는 늘 좋은 해답을 가지고 싶지만 미래는 희미하기에 정확히 그걸 알 수 없었고 고민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나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때문에 어떻게든 답을 내어놓고 그 답이 흘러가는 방향을 지켜볼 뿐이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혼자서 골머리를 앓지만, 벽처럼 느끼고 답답해하는 이 문제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주었다. ‘나도 그래’ ‘다들 그래’ 아니, 다들 정말 잘해나가고 있으면서?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이 스스로를 좀먹게 만든다는 것도 모른 채. 까만 밤길을 헤매는 듯 이 질문을 끌어안고 살았다.
그렇게 길을 잃은 기분이 들던 날에 친구의 권유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평소에 크게 관심이 있진 않았지만 솔깃하기도 해서 친구 따라 강남 가는 마음으로 따라나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 큰 부담도 없었고 게다가 경험해 보아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나의 결정은 대부분 이렇게 얼레벌레 이루어진다.
학원에서는 그 분야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쳐주었다. 거기서 내가 내 일을 하면서 쌓아온 기술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된다 하더라도 이것을 위해 다시금 활용해야 할 부차적인 기술일 뿐이었다. 그래도 퇴근 후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 가서 회사 일은 잊고 수업을 들었다. 과제는 열심히 하거나 잘하지 않았다.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던 셈이다. 수업에서도 처음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 대장이었기 때문에 곧 이런저런 쓸데없는 질문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저런 질문을 왜 해? 싶은 건 다 했다. 선생님은 내 질문에 그만의 답을 알려주었고 마지막엔 언제나 이렇게 덧붙였다.
“이게 정답이란 건 아니에요. 저만의 방식이고요. 여러분에게도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나는 늘 정답만을 원했는데, 학원에서는 늘 정답만을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때 ‘새로움’이라는 것에 몰입해서 이곳 말고도 비슷한 다른 학원을 몇 군데 더 다녔는데, 선생님들의 조언은 대개 비슷했다. 어학원에서 문법에 틀린 말을 쓴다거나, 운전면허학원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할 정도의 일만 아니면, 해답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었고 어떤 것은 ‘나만의 것’을 결국 만들어내야만 하기도 했다. ‘나는 정말 답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옳은 답을 찾아갈까?’ 하는 의문에 ‘나도 그래’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나는 인생이라는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닌데 왜 학교에 다닐 때나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을 치를 때처럼 선명한 해답만을 원했는지 모를 일이다.
얼마 전에는 수업을 듣고 나오면서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무거나 물어볼 데가 없어졌잖아. 뭐든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 마치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단 말이지. 그래서인지 뭔가를 배운다는 감각이 되게 좋은 것 같아. 선생님이 있다는 것 말이야.”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오히려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은데 여기서는 아무것도 몰라도 되니까.”
언제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몰라도 괜찮은 기분은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이런 세계로 도망친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마음이 무거워질 때는 무지라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
그 후로도 나는 조금씩 이것저것 배우고 있다. 궁금한 것은 웬만하면 ‘찍먹’ 해보고 좋았다, 안 좋았다 답을 내린다. 큰 부담 없이 즐기되 즐기는 기분이 사라지면 그만 배운다. 재밌으면 계속한다. 물론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을 배워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이걸 통해 뭔가 이뤄내야 해!’ 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생겨 오히려 거기에 매몰될 듯해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그렇게 공부하는 것들은 위의 예시인 즐거운 학습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에서 선생님은 필요하다. 타인이 깊이 알고 있는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작은 것들이라도 어린아이처럼 쏙쏙 흡수하는 기분은 꽤나 큰 만족감을 준다.
뭐든 처음 배울 때가 가장 재밌고 즐겁지 않은가?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선생님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