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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숲 Sep 02. 2020

우리의 계절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도 계절의 시간은 흐르더라.

시골집 옥상에 앉아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길고 길었던 장마와 태풍을 한 차례 보낸 끝에 모처럼 모습을 드러낸 별들이 조금씩 보였다. 실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처서’가 지났구나 싶었다. 절기는 못 속인다는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귀뚜라미 소리를 음악 삼아 들으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한낮 더위는 여전히 물러설 기미조차 없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서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느꼈다. 세상이야 어떻든 자연은 순리대로 계절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가 코로나 19와 싸우는 동안에도 계절은 오고, 가고, 또 온다.


안양천 둑길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아~드디어 봄이구나!”  벚꽃 머랭 쿠키를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안양천 벚꽃길로 산책을 갔다. 동네 물놀이터에서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맞으며 아이들이 놀기 시작하면, “와~ 여름이다!” 레몬청을 담그며 무더위 여름 대비를 했다. 그렇게 계절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그런데 이번 봄은 지나가는 차창 너머로 만개한 벚꽃을 스치듯 본 게 전부였다. 동네 물놀이터는 당연히 문을 닫았다. 밖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서울 아파트살이는 감옥살이가 됐다. 계절이 어떻게 오고 또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돌아보니 어느새 봄이었고, 벌써 여름이었다. 코로나 19는 나의 일상뿐 아니라 계절감마저 빼앗아갔다.


시골집 정원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자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만 왕따구나!


인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집안에 꽁꽁 숨어사는데, 마스크 없이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는데 자연은 얄밉도록 그대로였다. 여전히 개미는 줄지어 먹잇감을 나르느라 바빴고, 거미는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또 쳤다. 벌은 이 꽃, 저 꽃을 바쁘게 오가며 꿀을 모았고, 여름의 끝자락에 선 매미는 굼벵이 시절의 6년 한을 풀듯 사력을 다해 매앰~~~ 울어댔다. 모두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구를 마음껏 누비며 제 할 일을 하는데, 우리 인간은 뭐지?


어쩌다 인간만 자연의 순리에서 튕겨져 나왔을까?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의 주인공 고양이 ‘피타고라스’는 엄지 달린 인간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지금은 엄지 달린 인간인 내가 마음껏 숨 쉬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들고양이를 부러워하는 처지가 됐다. 어쩌면 지금이 ‘피타고라스’에겐 인간을 재끼고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상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훗날 뒤돌아보니 코로나 19가 인류 멸망의 시작인 건 아닐까?”


농담 반 진담 반인 내 이야기에 아이들의 반응은 건조하기만 하다. 엄마 또 시작이네... 그저 예의상 맞장구를 쳐준다.


“엄마가 SF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래.”


그럴지도.... 나는 SF영화와 소설을 그렇게 보면서도 한번도 이야기 속 일들이 내 일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의 후손들은 저런 시대를 살아가겠구나. 그 후손이 내 아이들일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빠르면 내 아이들의 아이들쯤? 그때쯤이면 저런 세상이 올까? 어쨌든 나의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마냥 재밌게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막연한 나의 생각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고 깨졌다.


오아시스라는 가상세계에서 게임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밌었다. 다만, 그 배경이 2045년이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2045년이면 지금으로부터 25년 뒤. 그러니까 큰일이 없는 한 내가 살아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쯤 되면 마냥 남의 일만은 아니구나... 싶어 아찔했다. 실제로 코로나 19가 그 미래를 앞당기고 있다.. SF영화에서나 봄직했던 원격화상수업은 어느덧 일상이 됐고, 마스크는 내 몸의 일부가 됐다. 조만간  인간의 폐가 지금보다 몇 배는 크게 진화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세상이 됐다.


어쩌다 보니 미래가 성큼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처음엔 곧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막연한 기대감으로 버텼지만, 이젠 그 기대감마저 사라졌다. 게임 아이템을 모으듯 마스크를 사모으며 획기적인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기만을 기다릴 뿐.  이 혹독한 시기가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옛날 사진을 자꾸만 들춰본다. 코로나 19가 없던 시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진 속 우리를 보고 또 본다. 그때가 그립고 또 그립다. 코로나 19에게 빼앗긴 지난 계절들이 아깝고 또 아깝다.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계절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대로 또 계절을 놓칠 순 없지! 이번에 오는 계절은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줘야지! 나는 오감을 활짝 열고 주위를 살폈다.


우리의 계절은 어디쯤 오고 있으려나...?


코 끝에 스치는 바람결에서 계절의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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