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26-29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죄로 인해 육체는 완전하지 못하고 매우 약하다. 이때 성령의 탄식으로 우리를 완전히 이끄시고 도움을 주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낙심되고 답답할 때면 기도를 못 할 수도 있다. 이때 성령께서 나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신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기도에 간섭하시며 우리의 기도의 방향을 바로 잡아 이끄신다. 탄식 안에 성령의 기도가 있다. 이 탄식자체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못하더라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 다시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만 봐도 성령님은 우리의 동반자이며 위로자이고 기도자인 셈이다.(27)
그리고.. 성령님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정확히 아시기에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 주신다.
즉 성령의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이므로 들으시고 기뻐하시며 백 프로 응답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설령 우리가 빌 바를 몰라 입을 다물지라도 성령님의 기도, 즉 탄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입고 힘을 얻을 얻어 일어 설 수 있는 것이다.(28)
한편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의 끝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은 결국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목적에 이르는 과정이다. 우리가 예수를 본받고, 그와 같아지는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게 만들어 가신다.
그래서 의롭게 된 자는 반드시 영화롭게 되며 우리의 구원은 확정된 것이기에 우리는 시련과 고난도 축복에 이르는 길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29)
우리는 체험을 통해 이미 성령의 도움심을 깨닫고 성령이 우리의 위로자이고 기도자이시며 동반자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적 사고는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셨으며 지금 부르시고 결국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는 구원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게 된다.
크리스천으로 첫 발을 디딜 때는 좋고 편한 것만 기대하며 살았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으면 잘 산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기도 한다고 잘못 가르치기 때문이다.
물론 잘 사는 것은 옳은 말이다. 예수를 믿으면 마음의 평강이 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도 인간적인 시련이 온다.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있다. 그건 예수를 믿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러나 힘들 때 기도라는 강력한 도구가 있다.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들으시며 기도가 안되거나 할 때 내 안의 성령께서 탄식하며 대신 기도해 주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라 믿는다.
예수께서 세상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 크리스천들은 늘 성경을 상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베뢰아인들처럼.
누구나 고난을 받아야 된다는 말씀 앞에 곤혹스러울 것이다. 나 역시도 고난은 싫으니까.
혹시 모르겠다. 베드로나 바울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면 가능할지도.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다를게 없고,
착하고 선한 행실을 하는 크리스천이 아닌 세상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내가 서서히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보아왔고 또 보고 있다.
현재는 말씀대로 영광에 이르는 과정에서 성령님이 늘 나를 돕고 계시다는 그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