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커피숍에 가면 사람들이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린 메모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솔직한 생각들이 왠지 더 깊이가 있고 공감이 간다.
오늘은 기억에 남는 낙서를 옮겨볼까 한다. 알 수 없는 많은 글자들과 낙서로 도배한 그 낙서장에는
웃음 짓게 만드는 글들이 숨어 있다.
첫째 낙서
결혼하면 혜경이랑 아메리카노를 사 먹으러 올 수 있을까? 엉엉엉
그리고 눈물을 마구 쏟는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 아래 택시를 그린 걸로 봐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만큼 늦게 놀았을지도 모른다. 친구와 함께.
결혼을 하면 자유롭게 커피숍에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건가.. 아님 결혼을 앞둔 처녀의 두려움일까. 그래도 삶은 고기 생각은 간절하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고기가 좀 당기긴 하지.
둘째 낙서
인생은 언제나 자기 옆에 있고 삶은 자기가 개척해 나가야 될 일이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잘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는 아래 검은색 하트 두 개. 지붕이 열리는 자동차. 하트 모양의 도형. 그리고 움직이는 집을 그려 넣었다. 아마도 이 낙서의 주인은 꿈이 많은 사람인 듯하다. 사랑도 뜨겁게 하고 싶고 비싼 차도 사고 싶고 캠핑카를 타고 먼 곳으로 여행도 하고 싶은 가보다. 아니면 그저 작은 집일 수도 있겠다. 거주할 자기의 집을 가진 다는 것은 이제 안정적인 삶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정착하고 싶기도 하지만 또 떠나고 싶은 존재이지 않은가. 그런 내면 심리를 그린 듯 하기도 하고.
셋째 낙서
시험이 내일인데 놀다 갑니다. 시험 망치겠어요. 근데 컵케이크가 꿀맛. 고등학교 첫 시험.. 떨리는데 공부는 안 하네요. 잘 치고 올게요.
--맞춤법을 잘 지켜 쓴 이 녀석은 공부도 좀 하는 듯.
이 낙서를 보니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다방 같은 곳에 가면 문제아 취급을 받던 시대였는데 말이다. 요즘 학생들은 참 자유롭다. 시험 치기 전날 컵 케이크를 먹으면서 커피숍에서 놀다 가다니.
걱정이 많을 때는 달달한 것이 더 맛난 법이지.
그래그래 시험성적이 뭔 대수냐. 학창 시절 시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커피숍에서 케이크를 먹고 도형까지 그리면서 놀다간 너는 참 대범한 녀석이야.
넷째 낙서
그림 솜씨도 뛰어난 낙서다. 이런 것이 그냥 쓰레기통으로 가면 아깝다.
얼룩 강아지 한 마리와 책 한 권. 그리고 비둘기 한 마리를 간략하고 멋지게 그렸다.
그리고는 비둘기 그림에 화살표를 하고 글자를 적었다. 그러고 보니 글씨체도 깔끔하다.
비둘기의 머리 <------작은 머리
비둘기의 가슴 <-------큰 가슴
비둘기의 다리 <-----얇은 다리
비둘기의 꼬리 부분 <-----큰 엉덩이
그리하여 종합적 평가는 ------완벽한 몸매 '둘기비'
---- 비둘기 그림을 놓고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자의 외형을 비둘기에게서 발견하였나 보다. 그 이상적인 비둘기의 이름은 '둘기비' 아 이런 센스를 보았나. 거리에서 행인들이 버린 닭다리를 정신없이 쪼다가 사람들이 다가서면 모른 척하는 그런 소심한 비둘기는 '둘기비'가 아닐 것이다. 가는 목을 앞 뒤로 흔들며 가슴을 앞으로 한껏 내밀고 큰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도도하게 걸어가는 잔디밭 위의 가느다란 다리의 비둘기일 것이다. 그 비둘기 이름은 '둘기비'
책을 두껍게 그린 것으로 봐서 지적이거나 지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아무튼 비둘기는 머리가 작아서 든 게 없다는 의미일 수도. 그래서 잘난 몸매에 빠지는 지적인 능력을 책으로 보강한 것일까?
다섯째 낙서
거수경례하는 군인 그림 , 그리고 옆에 대화창에
"찌니를 사랑하라는 명 받았습니다. 충성~!!"
--귀엽다. 위트가 넘치고. 그들이 사랑이 진지하고 굳건하기를
그리고 다들 축하해주는 관계이기를 바란다.
여섯째 낙서
화목한 가정의 자녀인 듯하다.
엄마는 따뜻하고 아버지는 자상하고 오빠는 친구 같고 나는 귀엽다?
이 집에서는 엄마가 아빠보다 서열이 위다.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저 왼쪽에 그리다 만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를 그리려다가 말았을까. 존재감이 없는 사람. 남자친군가?
그런데 그 존재감 없는 사람이 동그라미 안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나의 편에 멀리 서 있다.
중간에 오빠 부분에서 선이 그어져 있는 걸로 봐서. 미래의 남자친구. 아직 얼굴을 모르니까 안 그렸을 수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창문에 다닥다닥 붙은 메모지에서. 어떤 골목길의 벽에서. 공중 화장실의 벽에서 발견되는 작은 낙서들 속에서 발견되는 글들이 재미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