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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Jun 09. 2016

#메타세콰이아 아래서

나무들이 공중에서 몸을 휘젓는 소리를 듣다


생각이 많아져서 정신적인 여유가 없는 나이

 어깨에 등에 들러붙기 시작한 피로감의 무게를 통해 나이를 느낀다. 그 무게는 정말 강력한 것이어서 떨쳐내 보려 하지만 쉽지 않고 또 이 시기에는 우울함이라는 이상한 내적 무게도 한몫을 한다.

이때 나는 집 주변의 산책로를 찾는다.

산책로는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소나무 길을 돌아 메타세콰이아 길로 이어지는데 특히 하늘로 곧장 뻗은 우람한 이 나무들은 5월이 시작되면 자잘했던 새잎들이 한없이 풍성해져서 짙은 나무그늘을 드리운다.


한 번은 일요일 아침부터 피곤하였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씻은 후 아침을 먹을 시간도 없이 9시부터 고등부 예배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11시에 성인 예배를 연속적으로 드리고 나니 시계 바늘이 12시를 넘어 가리키고 있었다.

빨리 집에 가서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은 생각밖에 없을 만큼 정신이 몽롱하고 눈이 자꾸 감겼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이런저런 인사를 하느라 시간이 지체될 것이 뻔하므로 예배를 마치자마자 교회 뒷문으로 살짝 빠져나왔다.

 나는 아파트 정문을 통해 가지 않고 메타세콰이아 나무가 하늘을 찌르는 산책길로 들어섰다.



5월의 한 낮이었다.

 그 날따라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있었고 나무들이 그늘을 지어 가지들을 바람에 맡기고 사르르 사르륵 소리를 내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지 나 혼자 만의 길처럼 적당한 햇살이 내리쬐는 구불한 길은 호젓하다고 할 만큼 인적이 없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조용히 몸을 흔드는 모습이 흔들리는 화면처럼  나무 그늘과 햇살의 밝음이 교차로 이어진 길을 보노라니 바늘처럼 찌르던 머리의 통증이 확연히 드러났다.


5월의 신록이 햇빛에 반사되는 그 가로수 길로 조용한 숲 속으로 들어가듯 걸음을 천천히 떼었다.

새소리들과 나뭇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를 들으며 벤치가 있는 가운데까지 갔을 때는 저절로 눈이 감겼다.

나는 길 중앙 잔디에 놓인 긴 나무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체 모든 신경은 청각과 촉각에만 맡겨두었다,

바람이


 "사르르 사르륵" 


이파리들을 계속 쓸고 바람이 내 머리를 내 뺨을 쓸어주고 가기를 몇 번일까.

마음 깊은 곳에서 새 한숨이 흘러나오며 깊은 평안이 찾아드는 것이었다. 복잡했던 머리 속도 개운해졌다. 삶의 찌꺼기들이 물에 씻겨가듯. 머리도 가슴도 텅 비어갔다.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한적한 그 자리에서 멍하게 있는 동안 신이 내게 혼자만의 공간을 위해 모든 이의 발길을 돌려버린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그 축복의 시간을 즐기듯 바람의 손길을 부여잡고 키 큰 나무들이 공중에 몸을 휘젓는 소리에 귀를 더 기울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덧 내 안에 링거의 수액보다 더 큰 치유의 손길이 닿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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