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by 미셸 오

친구야

오늘 선선한 바람을 쏘이며 문득 네 생각이 났다.

그토록 친했던 너를 십여년 가까이 잊고 지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너는 지금 어느 나라 어느 땅에 살고 있는 거냐. 아니면 한국에 있는 거냐.

귀엽고도 예쁜 얼굴, 작은 목소리로 귀염을 떨던 너.


너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생전 처음 수강신청을 하던 날. 수강 과목을 선택하고 기록하면서 조금 당황하고 헤맸던 것 같다.

그때

처음 보는 여자애가 나의 자리로 오더니 수강신청 카드에 손가락을 짚으며

이렇게 하면 된다고 지적을 해 준 것이다.

완전 까칠 자존심 덩어리였던 나는

'흥 나도 할 줄 안다고~~' 속으론 기분이 나빠져버렸다.

그 후 한 달이 넘도록 너와 친밀하게 대화를 나눠 보지는 못하였다.

나는 나대로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있었고 너도 너의 친구가 있었지.

우리 학교 교양과목 체육교수는 고집쟁이 땡보 영감이었는데

1학기 때는 배구를, 2학기 때는 수영 점수를 과목에 넣었다.

우리는 체육시간 때마다 배구의 기본기들을 배워나갔다.

바람이 좀 세게 불던 날이었다.

우리 과는 조를 짜서 각기 연습을 했는데 치던 배구공이 바람때문에 자꾸 엉뚱한 곳으로 날았다.

그때 너와 나는 같은 조였고. 우리 둘이는 농담을 하다가 공을 자꾸 놓쳤다. 물론 바람 탓이 더 컸다.

처음에는 우리가 친 공이 바람따라 공중에서 휘어지는 바람에 웃음이 터졌었지만 한 번 터진 웃음은 쉽게 그쳐지지 않았다. 공을 치는 것보다 공을 주우러가는 횟수가 더 많아졌지.

패스와 토스를 할 때 우리 둘이는 시시한 농담에도 까르르까르르 넘어갔다. 서로 배를 잡고 웃느라고 배구는 거의 하지 못했다. 그 시간 이후 우리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지.


너의 집에 처음 갔던 날

그때서야 나는 네가 상류층 집안의 딸임을 알아보았다.

집은 물론이거니와 넓디넓은 디귿자의 싱크대 위에서 능숙하게 돼지고기 고추장 조림을 하고

탕수육을 시키고 또 갖은 반찬을 식탁 위에 가득 늘어놓던 너.

돼지고기에 입을 잘 안 대던 내가 삼겹살 이후 처음 맛본 돼지고기 볶음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냄비에 반찬을 휘휘 젓던 모습도 신선했다.

감자볶음을 하면서는

"우리 엄만 감자를 박스로 살 때만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간다."

"왜? 박스를 네게 들리려고?"

"응"

우린 웃었다.


늘 소박하게 옷을 입고 잘 사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았던 너.

넉넉하게 자란 덕분인지 성격도 무척 온화했고 화를 낼 줄 모르던 친구.

크게 소리 내어 웃고 활발했던 나와 달리 너는 키득키득 웃고 늘 조용조용 말하였지.

오히려 부잣집 딸로 가둬 자라 탓에 세상 물정을 몰라 더 순수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용돈으로 차비를 쓰고 나면 군것질할 돈이 없던 나에게 수없이 먹을 것을 사준 친구.

그렇게 지내다가 같이 졸업식에서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식 때 받은 금반지. 네 반지는 다른 친구가 받았고 나 역시 그 반지를 잃어버렸다.

어느 포장마차 집에서 말이다.

가족들이 다 서울로 이사하면서 4학년 초에 덩달아 올라가버린 너. 그리곤 소식이 끊겼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갓 낳았을 때

공중전화라면서 전화를 했던 것이 마지막인데.

너를 위해 너의 순수했던 사랑이야기는 접어둘게. 그 사랑만 아니었다면 너와 내가 이렇게 이별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어쩔 땐 그 사랑이 밉구나.


한 번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쵸코 파르페를 내게 처음으로 사달라고 했을 때 기억나냐?
사랑의 열정으로 힘들어하던. 그때.

그저 친하기만 했지 성숙한 조언을 못해준 것이 그저 미안할 뿐이다.

이 글을 보고

나를 기억하고 댓글을 남겨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친구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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