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

by 미셸 오
고등학교 시절.

여고 뒷 문에는 아주 큰 종합병원이 있었다.

몇십 년이 지난 후인 지금도 그 병원은 대도시에서 몇 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병원으로 서 있다.


아침 일찍 반 친구가 학교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삐끗하는 바람에 넘어졌고 교목 치마 안 검은 스타킹 위로 시커멓게 피가 스며올랐다. 그래서 급히 그 병원 응급실로 같이 가게 되었다.

따스한 겨울 햇살이 비쳐 드는 응급실에는 환자가 거의 없었고 하얀 시트가 깔린 빈 침대에 걸터앉아 기다리는데 급한 발걸음으로 젊은 의사가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흰 칼라의 검은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고생.

스타킹을 가위로 잘라내자. 친구의 무릎 부분 살갗이 찢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큰 상처였던 셈이다.

"아프지 않아?"

라며 자상하게 오빠처럼 굴며 조심조심 살갗을 꿰매 주던 젊은 의사의 손길에 친구는 별 통증을 느끼지 않는 듯하였다.

친구가 의사에게 상처를 치료받는 동안 나는 그 의사가 가운을 입지 않고 있다가 바로 달려온 것과 또 정식 의사가 아니라 실습 의사인 것을 알았다.

유리창으로 스며든 겨울 오전의 밝은 햇살에 비친 젊은 의사의 옆얼굴과 벌어진 상처를 완벽하게 봉합하며 약을 발라주던 모습이 왜 그렇게 멋지던지.

우리 둘은 일주일 동안 반 아이들에게 무릎을 다쳐 꿰매고 흉터가 났다는 그 사실보다는 젊은 의사 이야기만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에게 다정한 젊고 잘 생긴 의사에 대한 환상이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첫 이미지가 깨졌던 것은 대학교 때 의과대학에 다니던 한 선배가 학교 아래 버스 정류장 앞에서

좋아하는 후배에게 사랑을 구걸할 때였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후배에게 굳이 택시를 태워주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모습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게다가 몸이 너무 가냘파서 여자가 보기에도 보호본능을 일으켰다.


두 번째는 대학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워낙 유명한 의사여서인지 병실 앞에는 많은 대기 환자들로 북새통이었다. 당연히 의사를 보기 전에 이런저런 검사과정을 거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지치기는 환자나 보호자나 마찬가지였으나 의사가 조는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의사에게 본 진료를 받기 전에 여러 가지 기초 질문을 받던 의과생인지 레지던트인지는 모르겠으나

입술에 침을 가득 묻히고 졸다가는 환자에게 질문을 할 때만 눈을 떴고

자신의 졸음 오는 목소리는 탓하지 않고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 환자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의과생들이 잠이 모자라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저 남자는 분명 자신이 원해서 의사가 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후로도

크고 작은 일로 병원을 찾을 때마다 고등학교 시절. 그때만큼 친절했던 의사를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기만큼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아주 가끔은 '이 사람은 정말 환자를 고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의사가 된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주는 의사들이 있었다. 그런 의사들은 환자들의 마음을 먼저 편하게 하려는 애씀이 보인다.

그러나 아픈 환자에게 유난히 권위적인 의사들을 만나면 '이제 다시는 이 병원에 오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자신의 아픈 곳을 자세히 알고 싶고 의문 나는 것을 물어보기 마련인데 이것저것 묻는 것 자체를 귀찮게 여기거나 물어보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 짜증을 내며 환자들의 말문을 차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환자들 없는 의사가 무슨 소용일까?

환자에 대한 사랑은 없다손 쳐도 의사로서의 양심이나 의무 같은 것을 하찮게 여기는 의사들이 예상외로 많았다. 물론 그런 의사들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다시 찾지 않겠지만 그것에 들인 의료비와 약값과 마음의 상처들은 보상받기 어렵다.

사소함이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너무나 사소하지만 환자들에게는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아주 많다.

아는 언니가 겪은 일이다.

그녀는 이빨이 아파서 치과를 찾게 되었더란다.

그런데 치과 의사는 휴게실서 막 담배를 피우고 나왔던지 옷에 담배 냄새가 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의사가 환자의 어금니를 보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입 안에 넣었다.


"입을 아 벌리라고 하고 입안에 손가락을 넣는데 짭조름한 거 있지."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 손가락의 짭조름한 맛이 내게도 전염되는 것 같았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언제나 손을 소독하고 가운조차 간호사가 입혀주던 의사들의 모습은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것인가. 비단 수술을 하기 위해 서만이 아니다. 환자들이 늘 오가는 병실에서 의사가 담배를 핀 후 환자를 보는 것도 그렇고 손을 씻지 않은 것도 그렇다. 그런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아픈 곳이 완치가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또 한 번은 내가 안과에 갔을 때였다.

환자를 배려하는 의사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모든 검사를 마치고 의사를 대면한 자리였다.

"자 눈을 크게 뜨세요."
라면서 그가 내 눈꺼풀을 뒤집을 때마다 의사의 손톱에 일어난 살까스러기가 눈꺼풀을 자꾸 찔렀다.

"선생님 손톱에 일어난 살이 내 눈을 찔러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정말 사소한 것이지만 소중한 것들이 많다.

어쩌면 작고 작은 것 하나가 한 인간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그렇다.

학원가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작은 것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나의 태도에 기인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간 지키기였다.

학원에서 수업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선생님이 드물다. 오분 정도 일찍 마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수업을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수업을 잘 가르치느냐 마느냐에 앞서 그 선생님의 성실함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개인교습이든 학원 수업이든 일분이라도 일찍 수업을 끝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고 그것이 학부모들에게 점수를 높이 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잘 가르친다 해도 수업 시간을 성실히 채우지 않는 선생님의 수명은 길지 못하다.

또한 수업시간 중 농담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준비를 소홀히 하고 수업에 임하면 경력이 많은 선생님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고 학생들은 그것을 바로 눈치챈다.

실력이 없는 학생일지라도 선생님의 성실함과 실력은 알아본다는 의미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작은 것에 소홀히 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모든 직업에서 그러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하고 그 겸손은 하찮게 보이는 부분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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