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이승준 목사님의 답변
오늘 오전에
인간이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의 고통을 물동이에 비유하며 브런치에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믿지 않는 자들이 노동의 저주에 속하였다면 믿는 자들에게도 힘들게 느껴지는 노동의 고통은 무엇인가"에 대해 목사님께 질문을 드렸는데 조금 전에 목사님의 답변이 올라와서 그대로 글로 옮깁니다.
혹여 저처럼 의문이 있으신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하여 공유합니다.
이하는 우리 목사님의 답변 내용입니다.
오쌤 질문에 있어 금요 설교 보충하는 글입니다.
"인간이 원죄로부터 시작된 노동의 저주를 어떻게 축복으로 회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노동의 저주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가 꼭 필요합니다. 노동이란 원래는 한 인간의 존재에 의미를 주는 것이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며 하나님과 동역하고 교제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노동이 저주가 된 것은 아담의 범죄 후로 더 이상 하나님의 일과 관계없는 자기만이 생존과 생계의 차원으로 그 의미가 전락했기 때문입니다.(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즉 노동의 저주와 축복의 주된 차이는 노동의 목적과 의미에 있는 것이지 노동의 양이나 강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함이 옳을 것입니다.(그러나 저주받은 후로 노동량도 분명히 늘었을 것입니다. 땅이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는 적대적인 환경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자신의 노동이 결국엔 썩어 없어질 육신을 잠깐 먹여 살리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기 때문에 그 허무함이 저주의 핵심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죽으면 남는 게 없고 내 수고도 내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면 예수님을 만날 때 어떻게 이 저주가 풀리는가?
예수님을 만나면 노동이 없어진다거나 노동량이 줄어들고 수익이 늘어나는 그런 변화가 아니라 노동의 원래의 의미와 목적을 회복하기 때문에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당장 죽어도 천국에 가겠지만 예수님 때문에 내가 할 일이 있어서 이 땅에 머문다면 생계도 더 이상 내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입니다. 또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라면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주님과 동역하는 자체가 주님을 더 알아가는 일이 되고 주님을 경험하는 일이 되니 교제의 기뿜이 있습니다.
또 주를 위한 일은 나의 영원한 상급이 되고 자랑이 되니 예수님을 알기 전의 노동의 무의미와 허무함이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 왜 예수님을 믿는데도 여전히 노동이 저주로 느껴지는가?
첫째로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천국에 가고 싶은 예수님에 대한 사모함이 있습니까? 그런 사모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할 일이 있어서, 맡기신 일이 있어 이 땅에 머무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러지 않고 이 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에 살고 있다면 그 생계는 하나님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일 뿐입니다.
둘째로 지금 하는 일이 사명이 아닐 가능성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아닌데도 그저 돈이 되니까 한다거나 또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내 생각 능력 형편에 따라 닥친 일을 그저 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마음대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셋째로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도 약화되거나 변질될 가능성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도 인간의 욕심 인간의 방법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점점 더 하나님과 동역하기 어려워집니다. 어느 순간 자기 혼자 애쓰면서 괴로움을 홀로 지고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말씀에 순종함으로 또 끊임없는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할 때에만 노동이 축복이 됩니다. 성직이라도 그렇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 답변밖에 생각나지 않네요. 말씀의 의미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