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

by 미셸 오


학교 종이 땡땡 거리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수업을 하고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를 하며 뛰어놀다 보면 어느새 배가 훌쭉해지던 하굣길의 오후는 늦은 봄의 햇살만큼 나른하고 배가 고팠다.

학교 점심시간,지의 도시락에 떡국처럼 정갈하게 잘린 분홍 소시지의 도시적인 세련됨이 김치 반찬 도시락을 무색하게 하였을지라도 학교 앞 정문을 나서기만 하면 기분이 구름처럼 두둥실 솟고 발걸음도 나는 듯 가벼워젔다. 그것은 아이들을 기다리던 리어카 행상들 때문이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교대로 학교 정문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엿장수아니면 번데기 장수들.

그중 무엇보다 아이들의 군침을 다시게 만든 것은 번데기였다.

아이들은 "뻐언 데기 데기" 하고 노래를 부르며 번데기를 파는 리어카 앞에 몰려들 갔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갈색의 주름진 번데기가 한솥 가득 삶아져 고소한 냄새와 함께 번지르하게 윤기가 흐른다. 소고기보다 더 깊은 맛을 내는 번데기들. 입안에서 톡톡 씹히며 구수한 국물 맛이 더해졌다.

어디 그뿐인가. 번데기 옆에는 자잘한 삶은 고둥들도 있었다. 열탕에서 갓 나온 그것들은 꼬리를 잘려 푸르스름한 속살들이 갈색 딱지를 밀어내며 나와있었다. 따뜻한 그것들은 살짝 빨면 입안으로 속살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껍데기 안에서 우려진 고둥의 진액이 주는 훗 입맛. 가끔 세게 빨면 고둥이 목구멍으로 바로 넘어가기도 했지만. 짭쪼름한 맛이 번데기와는 다른 특미였던 셈이다.

번데기나 고둥은 종이 깔때기 한 컵에 각각 오 원이었다.

두 컵은 사야 그럭저럭 번데기 맛을 충족할 수 있을 만큼 가늘게 헌 책장을 둘둘 말아 만든 컵이었다.

그 번데기를 사서 입안 가득 털어 넣고 작은 고둥을 입으로 쭉쭉 빨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집 앞에 가 있었다.

가끔 번데기 장사가 나오지 않는 날의 오후는 왠지 힘이 빠지고 지루하였을 만큼 하굣길을 힘나게 하는 것은 번데기 장수였다고 기억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번데기를 시장에서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중국산 번데기가 수입된다 하고 또 더러운 곳에서 번데기를 아무렇게나 삶아 유통시키는 중국 현지의 밀착취재던가. 그 고발 프로그램을 본 이후는 번데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

그 전에 또 누군가가 "애벌레를 왜 먹는 거야?"

고 하는 바람에 번데기 맛을 잃었다.

사실 번데기의 배신은 중학교 1학년 때 일어났다.

생물시간에 번데기가 연두색의 꿈틀대던 애벌레였다는 사실을 알고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에서 지렁이나 벌레 같은 땅이나 나무 위를 몸으로 기어 다니는 벌레 종류를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이다. 소나무에 기어 다니는 송충이가 싫어서 소나무 솔잎도 싫어했을 정도다.

"호랑이보다 지렁이가 뱀이 더 무서워."

라고 공공연히 말해왔던 내가 그토록 징그러워하던 벌레 삶은 것을 먹고 있었다니. 설상가상으로

한 번은 번데기를 사서 먹는데 아직 덜 삶아져 번데기 일부가 초록빛인 것을 발견하고는 몸서리를 쳤다.

번데기는 진정 연둣빛 애벌레였고 삶기면서 색이 변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만 사건이었으니.

그동안 맛나게 먹었던 번데기까지 다 뱉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 중년이 된 후

번데기가 연둣빛 벌레였다는 사실을 애써 잊는다.

최근에 지인들과 동동주와 파전을 파는 가게에 들렀는데 안주로 번데기 한 접시가 나왔다.

예전의 그 통통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번데기는 아니었지만

젓가락으로 한 개 집어 입안에 넣고 씹으니 예전의 그 구수한 맛이 되살아났다.

시장이나 거리의 리어카에서 잘 볶아진 원두처럼 다갈색으로 빛나던 번데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번데기 이미지 출처-위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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