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by 미셸 오

오후 서너 시가 되어서야 이삿짐 마무리가 거의 끝났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고 십 년 이상을 살았던 집이었다.

천 가구 이상인 넓디넓은 아파트 단지에 주변에 아름다운 바닷길과 아름드리 메타세콰이아 나무가 줄지어 선 산책로. 단지 중앙을 지나는 길가에 심어진 벚꽃의 하얀 눈부심. 그리고 아파트 뒤로 펼쳐진 완만한 산등성이까지.

사는 동안 좋았다.

다만.

아직 낡지도 않은 아파트들을 제멋대로 리모델링한다고 여기저기 공사를 하다 보니 십여 년이 지난 후부터는

위층 아래층 소음이 지나치게 심해지고 말았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오래 정을 붙이고 살던 집이라 많이 아쉽기도 하였지만 어려서부터 살았고 내 청춘을 보냈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서 그 아쉬움도 오래가진 않았다.

이사 업체에서 사람이 와서 견적을 내고 간 후

이사 당일에 네 명이 왔다. 여자 한 명에 남자 세 명.

이사업체에서 단련된 듯한 사람이 세 명. 한 명은 아직 일을 배우는 중인지 계속 이렇게 저렇게 지시를 받고 배워가면서 일을 하였다.

가끔 리더로부터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지만 그 무거운 책상들과 냉장고 같은 것들을 옮기는 것을 보노라니 이삿짐 업체가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깨달았다.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이 이사를 할 때면 몇 날 며칠을 박스를 구해다가 짐을 싸던 때가 겹쳐지고 그때 우리 부모님들은 참 자주 이사를 하였었다.

얼마나 자주 이사를 하였는가 하면 일 년에 두 번을 한 적도 있었다.

이불은 커다란 이불 포대기에 꽁꽁 싸매고. 옷이나 그릇들은 일일이 신문지에 말아 박스에 넣고.

지금처럼 전자제품이 많은 살림은니였어도 다섯 가족 살림은 트럭 한 대였던 것이라.

그 이유는 커다란 장롱 탓이었다.

그래서. 이사하는 날은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들의 도움이 없어서는 안 되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아파트마다 붙박이 장이 유행이었고 그것도 나름 편리하였는데 요즘 신축 아파트 들은 아예 옷방을 따로 만들어서 '드레스 룸'이라고 한다. 얼마나 편해졌는지.

나중에는 몸만 옮겨 다니는 아파트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사를 하던 날은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사다리차가 씩씩하게 우리 짐을 땅 아래로 내릴 때 우리 가족은 이미 이사할 집에 당도해서 기다렸고

이삿짐은 점심시간이 지난 후 도착하였다.

그들은 짐을 거의 제자리에 다 옮겨준 뒤 스팀 청소기를 돌려 바닥까지 말끔하게 한 뒤 갔다.

내 돈을 주고 업체를 이용한 것이지만 그들의 노고가 고마워서 조금이라도 도우려고 하면 아예 나서지 말라고 강력하게 제지하여 그냥 짐 놓을 자리만 알려주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 집은 앞으로 9개월 후 입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 집에서 봄. 여름을 넘겨야 한다.

새동네에 아직 익숙하지 않고 정을 붙이자마자 떠나야 할 곳이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가 중요하니까 열심히 살아야 되리라.

생애 처음 이삿짐 업체를 통해 이사해 본 경험은 쓸쓸하면서도 새로웠다.

이사 전후로 며칠간 가스며 관리비며 주소이전이며 여기저기 서류 정리를 하러 다니고 정신없이 보냈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 이사를 하신 분들도 잘 살기를 바란다.

우리가 늘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