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 31절-43절
믿음은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한다.
맹인이 예수께 나아와 간구함으로 눈을 뜨게 된다.
맹인은 주님이 메시아라는 사실과 그가 행하신 것들을 들었을 뿐인데 믿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누가복음 18장 31절-43절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예수님이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모든 것이 응하리라 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31절-34절)
뒤이어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 맹인이 길가에 있다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크게 소리 질러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 한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맹인을 데려오라 하시고.(35절-40절)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맹인은 어려서부터 주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들어 믿었던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그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알 수 있다.
"다윗의 자손이여" (39절)(다윗의 자손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뜻하는 호칭)
"주여"(41절)
그는 주님이 메시아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분임을 확실히 알고 또 믿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눈을 뜨게 된다.
여기서 눈을 뜬다 함은 육신의 눈, 영적인 눈 두 가지로 다 생각해 볼 수 있다.
육신의 눈은 모든 것을 다 볼 수 없다. 한계를 가진 눈이다. 영의 것은 영적인 눈으로만 가능하다.
육신의 눈이 멀쩡한 제자들은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했던 메시아의 고난과 부활 등의 언급에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비록 예수님을 가까이하고 있다고 할 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한계를 보여준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여 깨닫기는
늘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그 안에 믿음이 확실하지 않다면
길에서 주님과 한 번 마주친 맹인만도 못한 결과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이 생기고 또한 그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믿는 믿음 안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