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간에
낮에 보아 두었던 미용실로 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 좌로 돌아 걷는데. 오른쪽 골목 일층에 작은 원통형의 무지개 등이 빙빙 돈다. 미용실이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마음을 끌었다.
환한 빛 가운데 서서 약간은 어두운 그곳을 바라보았을 때의 알 수 없는 아늑함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골목으로 난 작은 창으로 안을 엿보니 의자가 두 개인 아주 작은 미용실인데 여자 손님 한 명이 머리 손질을 받고 있었다. 문을 열고서 고개만 디민 체 컷 가격부터 물어보았다. 15000원 이라 한다.
미용실 안은 오랜 시간 속에 담겼던 듯 묵은 책방 냄새가 난다. 불빛도 흐린 날씨 탓인지 번져 보인다.
여주인도 손님도 40대를 넘긴 중년의 여인들이다.
내가 물었다.
"오래 기다려야 되나요?"
"아뇨. 다 해가요."
여자 손님은 곧 일어났다.
회색으로 염색을 한, 아니. 은같이 빛이 난다. 주인은 웃는 얼굴에 친근감이 있었는데 목소리가 짱짱하다.
조금만 잘라달라고 했더니 곧장 내 목에 수건을 두르고 슥슥 가위질을 잘한다.
"참 예쁜 얼굴이시네요~."
라고 그녀는 거울 속의 나에게 말을 건다.
어디선가 익숙한 억양이다 싶은데. 그렇지.
내가 아는 지인 중에 저런 목소리 톤을 가진 여자가 있다.
늘 경쾌하고 빠른 속도로 말을 많이 한다.
미용실 원장의 낯선 손님에 대한 입 발린 소리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진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네~감사해요~"
그녀는 또 가위질을 조금 하더니
"손님 교회 다니시죠?"
그런다. 좀 놀랐다.
"네? 어떻게 그걸..."
"하하하 제가 조금 볼 줄 알아서요."
무엇을 볼 줄 안다는 것일까.. 혹시 타로점 같은 것이나 관상 같은 것을 보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머리를 만지는 직업이라 웬만한 얼굴은 그렇게 알아보고 말하는 것일까..
나는 목에 그 흔한 십자가 목걸이도 하지 않은 상태고. 또 이 여자는 오늘 생전 처음 봤고. 게다가 여기는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되는 낯선 곳이다.
거울 속의 의아해하는 나를 본 그녀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착하게 생겼잖아요."
엥? 내가 착하게 생겼다고?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본다. 착하게 생긴 얼굴이라.
나는 내 얼굴에서의 느낌을 모르겠다. 솔직히.
요즘은 거울을 보면 서서히 나이 들어가는 중년 여자의 모습만 발견할 뿐.
예전에는 첫인상이 차갑고 날카롭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살이 찌고 나이가 차면서 좀 부드러워졌나 보다.
그래도 나의 첫인상을 착한 이미지로 보아 주니 다행이지 뭔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머리가 다 잘렸다.
그녀도 한 때는 잘 나가던 큰 미용실의 원장이었는데 지금은 가게를 작게 줄여서 예약제로 손님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경력이 있는 사람의 말투와 손놀림이었다. 머리도 내 얼굴형에 맞게 잘 되었다.
"지금 머리가 손님에게 딱 어울리는 머리세요~" 라고 말해준다.
이제부터는 이 미용실을 이용하면 되겠다 싶다. 실력도 좋고 가격도 적정하다.
주인의 환한 인사를 받고 나오면서 어제의 일이 생각난다.
어제,
머리를 자르려고 제법 크고 눈에 띄는 미용실에 들렀었다.
유명한 미용사의 이름을 건 체인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바로 미용실 안으로 들어가게 된 구조였고 생각 외로 실내는 한산했다.
가운데 의자에 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체 열기구를 쏘이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귀걸이를 하고 아이라인을 그린 젊은 남자 한 명과 또 다른 남자 직원이 나를 맞았다.
"커트하려고 왔는데요"
"혹 찾으시는 디자이너가 있나요?"
"아뇨"
그들은 계속 질문을 한다.
"소개받고 오셨나요?"
"아뇨"
여기는 소개를 받고 오는 덴가.
"그럼 좀 기다리세요." 한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눈빛을 읽었다.
그래서 대기석에 앉으려다가 다시 카운터로 몸을 돌리며 물었다.
"여기 커트 비용은 얼마죠?"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커트 비용이 줄줄이 적인 패드를 펼쳐져 보여주는 데 검은색 우단에 금빛으로 금액이 적혀있다.
난 그것을 읽으면서 좀 놀랐다.
:원장. 부원장-35000원
:실장-28000원
:그 외(뭐라 적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25000원
처음 보는 커트 가격이다. 가장 싼 것이 25000이다.
그 자리에서 미용실을 나와버렸다.
머리카락은 한 달만에 또 잘라야 할 만큼 계속 자라 오르는 것이다.
얼마나 머리카락을 예술적으로 잘라내기에 저렇게 비싼 것일까.
8년 전인가
동네에서 커트 비용이 12000원을 할 때 25000원을 주고 머리를 한 번 자른 적이 있다.
친구따라 서울의 모여대 앞 미용실에 들렀을 때였다. 유행의 중심인 곳이라 솔직히 그런 곳에 위치한 미용실들은 특별한 미용 기술을 가진 미용사 들일 것이라 지레 짐작하였다. 망설이는 내게 옆에서 머리를 잘라 보라고 권유도 한다. 유명한 디자이너가 잘라주면 얼굴이 훨씬 더 나아 보일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굳이 자를 때가 아닌 머리임에도 손을 대고 말았다.
경험이 있어 뵈는 남자 미용사가 의자를 빙 돌려 나를 앉히더니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내 머리를 이리저리 쓸어보았다. 미용사의 얼굴과 내 얼굴이 거울에 나란히 비추던 그 거울 속은 이상하게도 묘한 기대감을 업 시켜주었다.
그리고는 현란한 가위질.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잘린 단발머리는 파도가 넘실대듯 여태껏 볼 수 없었던 머리였다. 그런데 한껏 부드러운 조명 아래 세련되어 보이기는 하였으나 마음 한쪽이 영 불안하였다. 내가 원하고 그려냈던 머리 형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차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차 창안으로 불던 바람에 그 머리는 형태를 곧 잃었고. 다음 날 머리를 감았을 때는 들쑥날쑥해진 머리를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한 마디로 바람머리를 만드느라 그랬던지 머리칼이 빗자루처럼 쓸리듯이 잘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잘린 머리가 원상태로 돌아오는 데는 한 달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나의 기대치. '~하리라' 고 추측했던 것의 뒷맛은 씁쓸 그 자체였다.
이번에도,
그때의 기억이 없었다면 35000원이라는 가격에 대한 기대를 품고 머리를 맡겼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시술이 마쳐진 다음에는 상상대로 머리가 나오지 않아서 또는 뭔가 다른 세련됨을 느끼고 일어섰을지라도 분명히 후회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머리는 너무 빨리 자라니까 말이다.
물론. 그만한 가격의 경험과 기술을 가졌기에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타인이 나에게든. 내가 타인에게든. 과하지 않게. 적당하게. 욕심을 내지 않는 것임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