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풍경

by 미셸 오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의 봄이다. 겨우내 시들었던 나뭇잎들은 다 어디로 가고 새롭게 돋아나는 푸른 나뭇잎들이

5월의 햇살 아래 춤을 춘다.

4월은 누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데. 내겐 정말 4월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깨가 아플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20년도 넘게 같은 학년을 가르쳐 왔는데 요즘 학생들은 너무 똑똑하고 이해력도 빠르다.

인터넷 강의와 유튜브 강의가 넘쳐서일까.


특히 내로라하는 특목고 학생들은 시험 범위가 너무 많아서 복습할 시간조차 내기 힘들었다.

한 문제 실수하면 등급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곳이 그곳의 학교다.

예상문제니 변형 문제니 열심히 풀리었건만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오랜만에 걷는 산책길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여유가 없을까.

내 나이 때의 어떤 사람들은 외국 여행 중이고 또 골프를 치고 또 지인들과 단체 여행을 떠나 있다.

나는 한 달 내내 컴퓨터 앞에서 예상문제와 씨름했고 복사 종이만 천장을 썼다.

피곤을 풀기 위해 커피만 하루에 다섯 잔 이상. 목은 자라목이 되어가고 눈은 침침해져 간다.

오늘 오전 일찍 병원에 갔더니 혈압이 지난주 그대로다.

늘 피곤해 있었다.

지난주에는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병원에 갔는데 혈압이 160/110이 나왔다. 의사는 혈압약을 먹지 않으면 20년 후 병에 걸린다며 혈압약을 처방해 주었다. 혈압이 140도 아니고 160 이라니.. 스스로도 놀랐다.

1년 전 건강검진 받았을 때 다른 의사는 혈압이 높게 나왔다며 운동을 하라고 권유했고 운동 후 혈압이 내려갔었다. 조금만 무리하면 이명이 생기고 눈이 침침하고 그랬지만 그냥저냥 참고 넘겨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험기간 동안 늘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혈압을 높였던 원인 같다.


혈압약을 일주일치 먹으면서 어지럼은 차츰 나아지는가 싶었으나 머릿속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오늘 진료 대기 중에 혈압을 재었더니 110에 85가 나와 순간 안심을 했는데 의사 앞에 앉은 후에 다시 재니 160으로 뛰었다. 이게 뭔 일이람?

의사는 혈압약을 바꾸자면서 좀 센 걸로 처방했다. 혈압약에 대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기분이 퍽 상하지만 할 수 없었다. 어떤 의사는 혈압의 수치를 믿지 말라고 하고 또 혈압약이 오히려 몸의 질병을 높인다고 하던데.

도무지 무엇이 진리인지 알 수 없으되 일단 내 몸이 불편하니 혈압약을 먹지 않을 수 없다. 의사는 다음번에 올 때는 심장 엑스레이도 찍고 피검사도 해보자고 한다. 병원을 싫어하는 나는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싫다.


간호사실로 나와 혈압이 좀 전과 다르게 나왔다고 하니 내 혈압을 쟀던 간호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혈압계를 들고왔다.


"네? 그럴 리가 없어요. 정상으로 나왔는데.."


그러면서 다시 수축기로 혈압을 재었다.

150이었다. 혈압이 왜 이렇게 들쭉날쭉 일까? 화장실에 들른 후 다시 재었더니 155다.

할 수 없이 의사가 처방해준 혈압약을 지어왔다. 물론 약을 지으면서도 약사에게 시시콜콜 물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새로이 처방된 약을 먹지 않고 혈압을 낮출 수는 없을까.

혈압을 낮추기 위해 소식을 하고 산책을 하며 자주 걷기로 마음먹었다. 살을 쉽게 빼고 건강해지는 데는 수영이 내겐 잘 맞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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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해도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영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겨울에 비염이 심해진 이후 그만두고 여태껏 운동을 해보지 않았다. 수영을 다시 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수영장이 너무 멀고 또 석달에 한 번은 수영복. 수경. 등등을 새로 사야 하고.. 또

수영장에 뿌려지는 락스 물을 본의 아니게 마셔야 하고..

수경을 쓰고 물속으로 자맥질할 때 둥둥 떠다니던 사람들이 흘린 콧물도 봐야 되고

더럽다고 느끼는 순간 실수하여 그 물을 들이켜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엄마 또래 할머니들이 화장실에 가기 싫어 소변을 수영장 물속에 흘리는 것도 모른 척해야 한다.


아무튼 지금은 자연을 보며 산책하는 것이 제일 좋다.


5월의 바람이 시원히 분다.

지난달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는데 한쪽에서는 이미 지고 있다. 진달래는 성글게 피는데 철쭉은 저렇듯이 모여 핀다. 공동체의 무리처럼.

봄바람에 가늘게 핀 꽃대들이 바람 부는 대로 마구 허리가 휜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는 미세먼지가 흐릿하게 눈을 가리지만

산책로에는 겨울에 그렇게 바싹 말랐던 나무들이 온몸으로 푸른 이파리들을 내놓는다.

초록이라고는 하지만 다 같은 초록이 아니다.

눈이 시원하다.

그러면서 나는 또 아이들이 국어 시험을 잘 쳤는지 걱정하고 있다.

마침 호주머니에 든 휴대폰에서 문자 수신이 또르르 구른다.


집에서 나올 때 염려되는 몇몇의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인가 보다.

"샘.. 90점대 받은 것 같아요." 활짝 웃는 이모티콘까지 겸해서 보내왔다.

다행이다 싶은 순간 또 다른 학생의 문자가 온다.

"그렇게 잘 친 것 같지 않아요." 음.. 순간의 희비가 엇갈린다.

학생들 본인들만큼 성적에 울고 웃는 직업.

프리랜서라는 직업이 시간이 갈수록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가르칠 때마다 공부할 양은 더 느는 느낌.

길을 멈추고 행운의 네 잎 클로버가 있나 눈으로 찾아본다.

어떤 여자는 한 군데서 네 개의 네 잎 클로버를 찾아내던데. 왜 이렇게 안 보이는 건지.

나도 행운이라는 것을 좀 만나보자 싶다. 역시나 없다.

행운은 무슨... 하루하루 아무 문제만 없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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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새끼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뜨인다.

장미꽃이 화들짝 피어난다.

서늘한 꽃 냄새 또 푸른 이파리 냄새. 이 5월의 풍경 속에서 잠시 멈추고 쉼을 누려본다.

하루하루 걷는 길이 5월의 풍경처럼 아름답기를.

이제 시험은 끝났고 다시 또 시작될 내일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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