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열무가 나온 것을 보고 그냥 카트에 올려버렸다. 이제 갓 밭에서 따 올려진 듯 푸릇푸릇한 열무가
어느새 맛난 열무 물김치가 되어 내 앞에 비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내 입안에 감도는 열무 김치의 아삭한 맛의 결과가 김치 만드는 과정을 압도했던 것이다.
인터넷을 뒤지면 김치 만드는 레시피가 가득하니 그중에 하나만 골라 그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이미 사다둔 젓갈은 있었기에 감자전분만 더 추가로 샀다.
언제까지 "김치를 못 담가서.."라는 말을 할 것인가.
집에 와서 열무 석단을 정리하고 씻으려니 김치를 절일만한 큰 대야가 없다. 인간은 하루 앞을 못 본다고.
엄마가 내게 남긴 큰 대야며 큰 솥이며 다 버리고 왔는데 막상 살아보니 다 필요한 것들이었네.
김치가 남아 넘쳐서 시어 버리는 것만 보았던 터라 아깝게 시간 들이고 돈 들인 것들을 못 먹게 될 때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김치는 사서 먹으면 돼!"
그렇게 해서 2년간 인터넷에서 마트에서 김치란 김치는 다 사서 먹어보았다. 그러나
비싸고 맛난 김치는 가격 대비 양이 적었고 산지에서 산 다소 가격이 싼 김치들은 양념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채소 씻던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 두 개를 가지고 열무를 나누어 조심조심 씻은 후 굵은소금을 뿌렸다.
열무가 절여지는 동안에 고구마 전분을 준비하고 양파 껍질을 벗기고 생강도 다지고 마늘 빻고... 하다 보니 일이 너무 많다.
늘 깨끗하던 싱크대 위가 김치를 위한 준비물 들로 빈자리가 없이 꽉 찼다.
이것저것 양념을 다 준비하고 나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그냥 사서 먹지.. 실패하면 어떡할라고.."
냄비에 전분 푼 것을 저으면서 하는 딸의 말이다.
엄마가 김치를 만든다면서 자꾸 저에게 일을 시키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저번에 담갔던 깍두기의 실패 탓도 있을 터였다.
"안돼. 김치를 자꾸 사 먹으니 이젠 밥맛이 안나. 할머니의 손맛이 내 유전자에 있음을 믿어."
그랬다.
나는 우리 엄마의 유전자의 힘을 믿어 보기로 한다.
젓갈을 무엇을 넣어야 할지 인터넷 레시피가 각자 달라 다 넣었다. 감자 전분은 너무 걸쭉한 것 같고 고춧가루는 너무 적은 듯하다. 게다가 매실청이 없다. 할 수 없이 5년 묵은 매실주를 넣는다. 그런데 김치에 술을 넣어도 될까.
절여두었던 열무를 가볍게 헹군 후 물을 빼고 드디어 양념을 버무리기 시작하는데 제법 김치의 모습이 난다.
그런데 맛을 보는 것이 조금 겁난다.
짜거나 쌉쌀하면 큰일인데 말이다. 조금 뜯어 입안에 넣어보니 그냥 맛이 그렇다. 일단 숙성하기로 하고
김치통에 넣어 베란다에 두었다. 제발 숙성되면 맛나기를...
여기는 재래시장이 없다 보니 생고추 간 것을 구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엄마는 열무김치에 꼭 생고추 간 것을 써야 맛이 난다고 하였거늘. 그리고 열무에 늘 밥을 갈아 넣어서 열무김치 국물이 자작자작한 것이 국물 맛도 일품이었는데. 밥을 갈아서 넣을 여유는 갖지 못한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너무 김치를 많이 담가 주어 냉장고에 시어터 질 때도 많았고 김장 김치는 다음 해까지 남아돌아 여기저기 나눔을 많이 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김치복이 터져서 귀한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오늘 한 번의 도전으로 만족할 만한 열무김치는 아니지만 이제 김치를 버무릴 스테인리스 대야도 사면 조금씩 조금씩 김치 만들기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엄마의 손맛이 내 손을 타고 흐를 때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