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 청첩장을 미리 받아보고 부주로만 성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던 1년 전에 살았던 지역의.
이 어머니는 그 지역의 유지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항상 겸손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분이었다.
딸 셋에 막내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딸 셋은 모두 내가 가르쳤다.
너그러운 품성이 다들 엄마를 닮아 선생님을 편하게 했고 또 성실한 아이들이었는데
그 세 딸 중 막내가 이번에 결혼을 한 것이었다.
세 딸 중에 키가 가장 컸고 늘 콧노래를 흥얼거리면 그 소리가 마냥 경쾌하여서 성악과를 가면 좋지 않을까 하였으나. 지금은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로 있다.
결혼 상대자인 남편도 훈남이지만 내게 국어를 배웠던 순수했던 여고생 빈이는 얼마나 예뻐졌는지 길에서 만나도 전혀 못 알아보겠다.
서울 물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으되 막내아들도 그렇고 아이들이 다들 멋지고 훌륭하게 자란 모습이다.
결혼식 후 부모님을 껴안는 장면에서 신부는 눈물을 훔친다. 부모의 그늘을 떠나는 것을 실감해서일까.
나는 그 동영상에서 또 한 가정의 탄생을 지켜본다. 그러나 역시
결혼식에서 남편의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아름다운 신부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시간 속에서 완전히 달라져 버린 빈이의 모습을 자꾸 보고 또 본다. 가슴이 뭉클뭉클하다.
이 아이의 결혼식을 보고 나니 또 한 명의 결혼식이 생각난다. 외국에 살아서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결혼식.
외국으로 유학을 가더니 외국 남자와 결혼을 했다. 변비가 심하다고 요구르트 12개 한 묶음에 빨대 12개를 꽂아 마시던 통통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길고 긴 생머리에 날씬한 모습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탈바꿈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외국인 남편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는 사랑스러운 신부가 되어가지고.
특히 여학생들 대부분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일대 변신을 하는 듯하다.
한편
귀엽고 애교 많던 남학생들은 한껏 성숙한 어른의 얼굴을 하고 카톡에서 진지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반면
드물긴 해도 고등학교때의 모습하고는 딴판으로 한껏 잘생긴 모습으로 변해서 못 알아본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런 제자들의 모습이 늘 신기하고도 낯설다.
그들이 그렇게 변하였듯이,
나도 내 거울 속의 모습에서 변해가는 나를 바라본다.
그들은 인생의 찬란한 시기를 통과하며 빛을 내는 듯한데 나는 이제 중년의 시간을 보내며 젊음의 시간을
그들에게 내 준 것만 같다.
2년 전만 해도 언제나 내 옆에서 나를 귀찮게 했던 엄마의 잔소리가 영원히 과거 속에 묻혔는데
한 번씩 잠자리에 누워 엄마와 같이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내게 있었던 엄마라는 존재가 내 옆에서 사라져 버리고 없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원두커피를 먹을 때
"아~맛 좋다"
하던 엄마의 목소리며 열무김치를 담글 때 베란다에 절인 김치만 대야에 부어놓고 설탕 가져와라. 젓갈 가져와라 김치통 가져와라 등등 나를 귀찮게 하던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철없던 대학교 시절 내 옆에 없었고 또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던 한 생명.
지금 작은 방에서 열심히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는 저 아이.
내 딸은 어디에 있다 나타난 것인지.
게다가 한 번씩 의견 차이로 얼굴이 붉어질 때면 나와 전혀 다른 성격에 식습관에 신기할 뿐이다.
나는 한 번씩
내게 수업을 들으러 오는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자기네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웃을 때
"너희들은 어디 있다 나타난 것이야?"
라고 신기해서 물어본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의 생뚱맞은 물음에 멍하니 바라본다. 자신들의 출생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들에게 난 단지 국어 선생님일 뿐이다.
2000년. 밀레니엄이 시작되었을 때도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 저 아이들을 내가 보고 있는 순간이
신기하고 믿기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창밖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안개가 자욱한데. 빗발이 세다.
나는
내 의지대로 이 곳으로 왔고. 1년 전만 해도 말로만 듣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곳의 삶에
어느덧 익숙해져서 이 곳의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또 정을 들여간다.
집 앞의 꽃집 총각. 아파트 상가의 편의점 여사장님. 아파트 정문 입구에 있는 잘생긴 커피숍 사장하고는 이미 낯이 익었고.
너무 낯설어 어색했던 독서 모임의 회원들도. 우리 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도 점점 친해져 가고
그들과의 인연 속에 또 새로운 인연들이 탄생하고 있다.
그들 중에서는 나의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았던 분도 있고. 나의 고등학교 선배도 있었다.
어느 시점에. 같은 공간에 있었다가 지금 이 시간에 다시 인연으로 끈을 맺어 나가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인생에서 만나게 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