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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쌤 이야기
#조명섭-신라의 달밤
by
미셸 오
Mar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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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섭이 '신라의 달밤'을 부를 때면,
나는 아주아주 오래전 신라의 달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그네가 된다.
이제 여든을 넘기신 나의 친정아버지가 젊었을 때 엘피판으로 현인의 '신라의 달밤' 같은 트롯을
내내 들었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 그의 초등학생 된 딸은 흑백텔레비전을 보며
나미의 <빙글빙글>을, 윤수일의 <아파트>를 들으며 자랐다.
이후 중학교에 가서는 한국의 유행가요와는 다른 느낌의 이국적인 언어의 팝송에 젖어 살았었다.
팝송의 멜로디는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여고생, 특히 감성이 풍부한 나에게는 시간을 뺏는 것이었으니,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였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가요에 흥미를 잃었다.
KBS 방송 캡처
KBS '불후의 명곡'에서 조명섭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동안 단단히 굳었던 트롯에 대한 편견이 그가 뱉어내는 한 소절 한 리듬이 빛나는 물고기가 되어
내 깊은 심연을 부드럽게 유영하며 유리알처럼 부서졌다.
"아아~~ 신라의 달~밤~"
의 "아아~~"를 듣는 순간 천년 고도 신라의 달밤으로 강제소환당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의 목소리가 자체가 신라의 달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의 노래에 심취하여 신라의 달밤 속을 종일 들락날락거렸다.
조명섭 가수가 부르는 신라의 달밤을 계속
붙잡고
놓고 싶지 않았다.
그의 노래를 들어야만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신라의 달밤 속에서 유유히
걸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달밤같이 부드럽고 깊은 울림의 목소리,
신라시대에 지어진 향가 <처용가>를 보면
경주의 달이 너무 밝아 밤늦도록 노니다가 집에 늦게 들어간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때문에 자신의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뺏긴다.(물론 여기서 남자는 역신으로 해석합니다만)
그처럼 신라의 달
밤이 아름다웠음이리라.
그리고 박목월의 <불국사>라는 시가 있다.
그 불국사에는 바람소리 소나무 소리가 들리고 범영루의 뜬 그림자가 있다.
<불국사> 박목월
흰 달빛 자하문 달 안개 물소리
대웅전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하략)
조명섭
의 '신라의 달밤'은 박목월의 시 속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신라의 밤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그 신라의 밤 속을 걸으며
바람소리 물소리를 듣는다.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들린다.
그때 달밤을 걷던 사람은 그 달밤에 매료되어 밤늦
은 줄 모른다.
좀 있으니 불국사의 종소리가 밤의 무거운 어깨를 털어낸다.
고즈넉하고 외롭지만 어딘가 따스한 기운이 가득하다. 나그네가 발걸음을 어찌 재촉할 수 있겠는가.
나는 조명섭의 '신라의 달밤'을 들은 후 다른 노래도 들어보았는데 그가 신라의 달밤을 부를 때
신라의 달밤을 보여주듯이 그가 동백꽃을 부르면 동백꽃잎이 떨어지는 것을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청각의 시각화
를, 소리로 그림을 그리는 가수라고나 할까.
진지함 가운데 가끔씩 환하게 웃는 웃음과 가지런하게 드러나는 흰 치아.
맑게 빛나는 깊은 눈동자.
올백머리.
겸손한 태도와 연변의 말투 같은 억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의 멋진 음성과 울림.
KBS 방송 캡처
이 작은 거인 같은 가수가
이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우리를 저 멀리 천년 고도, 신라의 달밤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안내하는 노래.
그 노래는 바로 조명섭의 '신라의 달밤'이다.
아주 오래전 조상들이 살았던 신라의 달밤을 걷고 싶은 사람은 조명섭의
'
신라의 달밤'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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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현재, 고등부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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