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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방

by 미셸 오

오늘은 미루고 미루었던 이불을 세탁하는 날.

겨우내 덮었던 이불을 세탁방 세탁기에 밀어 넣고 팍팍 돌아가는 이불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세탁조 안 이불들이 비눗물에 철썩철썩 힘차게 도는 양이 빨래방망이로 이불 홑청을 패대기치는 것 같다.


어릴 적 동네 우물가에서 빨래방망이 두드리던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퍽퍽! 딱딱딱!!"


동네 아주머니들의 방망이 장단이 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씻긴 것은 또 다듬잇돌에 올리고 또


"따닥따닥"


주름을 펴곤 했었는데.

옛날에 우리 엄마들의 이불 빨래는 하루 종일 해야 되는 노동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도 풀었지 싶다.

특히 목화솜이불.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왔다는 그 목화솜 이불은 매번 껍질을 벗기고 씌우고 바느질까지 해야 하는 귀찮은 일이었다. 봄이 되면 엄마는 장롱 속 두터운 이불의 홑청을 하나하나 다 뜯었고 빨았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들이 싫었다. 종일 이불 서너 개는 기워야 하는데 이불 끝을 마주 잡아당겨서 이불 가장자리들을 맞추는 데는 늘 내가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큰 이불과 요를 바느질로 깁느라 방바닥에 이불을 다 펼쳐놓는 것도 , 매번 한 개의 이불을 맞출 때마다 나를 부르는 것도 왜 그렇게 귀찮던지. 게다가 이불 홑청을 팽팽하게 잡아당길 때는 엄마 손 힘에 밀려 앞으로 달려 나가곤 했는데 내가 하기 싫어 힘을 빼면 엄마는 몇 번이고 빳빳하게 잡아당기라고 성화였다.

이젠, 이불 홑청을 뜯을 일도 없고 솜과 홑청을 붙여 기울 필요도 없다.

이불 집에 가면 가볍고 예쁜 이불들이 널렸고 또 예전처럼 방바닥만 뜨거운 온돌방이 아니라서 두꺼운 이불도 필요 없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 당신은 그렇게 아끼던 목화솜 이불을 버리셨다.

온기가 가득한 보일러 방에 두터운 목화 이불이 맞지 않았다. 더욱이 목화솜 이불을 터는 데가 있어 멀리까지 가서 맡겼는데 맡긴 이불은 얇은 두 개의 이불이 되어 돌아왔다.


"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리 목화에 다른 솜을 섞었네."


혹시나 싶어 이불 홑청의 끝을 뜯고 속안을 확인한 엄마의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어렸다.

그후 엄마는 목화솜 이불에 대한 미련을 버리셨고 우리는 그 얇아진 이불을 몇 년 덮고 지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이불은 다 씻겼다.

이제는 그 이불을 옆 건조기에서 말릴 차례다. 다 씻긴 이불을 꺼내 옆 건조기로 옮겼다.

건조기 안은 원통형으로 아주 넓다. 이불 속까지 잘 마를 것 같다.

30분.

불편한 점은 오백 원 동전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온통 카드로 결제하는 시대에 동전만 받는 빨래방이라..

만 원 지폐 오백 원 동전으로 바꾸어 하나하나 세어 넣다 보니 건조기에는 오백 원을 추가로 더 넣고 말았다.

추가로 더 넣은 것은 환불이 안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어느덧 건조도 다 되었다.

따끈따끈하게 말려진 이불을 꺼내니 향긋하고 깨끗하다.



오늘처럼 봄햇살이 쨍쨍하고 바람이 불어주면 이불빨래 하기에 딱 좋았는데 세탁기 안에서

훈훈하게 건조된 이불이라니.

바싹 마른 이불을 큰 가방에 옮겨 담고 벚꽃이 환한 햇살 아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추운 겨울,

아랫목에 묵직한 요를 깔고 두꺼운 목화솜 이불을 덮던 그 시절에 이런 세탁방이 가당키나 한가.

목화솜은 먼지를 털어내야 하는 것이고 씻을 수는 없다.

온돌이 보일러 난방으로 변하고 이불도 그에 따라 가볍게 변하고 또 빨래방도 맞추어 생긴 듯하다.


후일.

이 빨래방도 오래전 사라진 비디오 대여점처럼 과거의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본다. 그 하늘에선가 기분좋은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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