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산문집'을 읽었었다. 작가는 재즈와 클래식과 와인을 좋아한다고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도 클래식이 나오며 위스키나 와인이 소품으로 자주 나온다.
주인공 쓰쿠루는 고등학교 때 다섯 명의 절친한 그룹의 한 일원이었으나 갑자기 그들로부터 이유도 못 듣고 외면당한다. 그 친구들의 넷은 이름에 색깔이 있었고 스쿠루가 보기에 그들은 각자 개성이 넘쳤고 좋았지만 자신만은 이름처럼 밋밋한 것이 색채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네 명의 친구들은 나고야에 있었고 쓰쿠르만 도쿄로 떠나왔지만 그는 나고야의 그 친구들로 인해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갑자기 외면당한 후 쓰쿠루는 절망에 빠지며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난다.
'어쨌든 다자키 스쿠루라는 이름을 가진 예전의 소년은 죽었다. 그는 황량한 어둠 속에 잠겨 들 듯 숨을 거두었고 숲 속의 작은 공터에 묻혔다.(중략) 그리고 새로운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마음에 새겨갔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고 그 문법을 암기하듯이.'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진 상처를 알게 된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는 지울 수 없어."
"그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아.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후 그는 사귀던 여자 사라의 조언과 도움으로 오래전 그 친구들을 찾아가 왜 그때 쓰쿠루를 외면했는지 묻게 된다. 그 네 명의 친구들 중 아름다운 시로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머지 친구들-아오. 아카. 구로를 만나러 떠나게 된다.
쓰쿠루가 처음 만난 남자 친구 아오를 통해서는 그들 모임에서 배제되었던 이유가 쓰쿠루가 시로를 강간했기 때문이었고, 물론 그것은 거짓이었지만 다들 알면서도 시로의 말만 믿고 외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아카를 만나서는 시로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지막 여자 친구 구로는 핀란드에 가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쿠루는 핀란드까지 구로를 찾아 나선다. 나는 구로와 스쿠루가 만나는 장면이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친구들을 찾아 나선 마지막 순례의 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한테는 나라는 게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개성도 없고 색채도 없어.(중략) 난 언제나 나 자신을 텅 빈 그릇같이 느껴왔어.....(중략).. 혹시 네가 텅 빈 그릇이라 해도 넌 정말 멋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릇이야.
..(중략)..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그 안에 뭔가를 넣고 싶어 지는 확실히 호감이 가는 그릇으로."
예전에 구로가 스쿠루를 사랑했었고 자신과 맞지 않은 상대였기에 지레짐작으로 시로를 핑계 삼아 관계를 끊게 되었다는 구로의 말을 통해 스쿠르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상대방이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전혀 달랐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창밖으로 핀란드의 호수가 바라보이고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하는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들으며
그들은 서로 뜨겁게 껴안는다.
그것은 지나간 고통의 시간들의 위로와 함께 현재의 살아있는 시간들에 대한 감격이었던 것일까.
나도 이 장면에서 유튜브를 통해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하는 '순례의 해'를 들었다.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슬픔이 가을 낙엽처럼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스쿠루가 친구를 찾아 나선 것만이 순례일까? 우리가 사는 인생의 여정이 바로 순례의 길인 것을.
구로는 스쿠루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나도 너도.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에게는 살아남은 인간으로서 질 수밖에 없는 책무가 있어. 그건. 가능한 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야. 설령 온갖 일들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이제 핀란드에서 돌아온 스쿠루는 사라를 진정 사랑한다고 느끼며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여태껏 마음속에 뜨거운 갈망이 없었던 그가, 친구들을 찾아 나선 후 뜨거운 마음속 열망을 갖게 된 것이다.
사라와 어떻게 되는지 결말은 없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쓰쿠루는 반세기가 지나도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는 태그호이어 시계를 좋아했다. 부동산 재벌인 그의 부친이 유산으로 물려준 것인데, 삼일만 차지 않아도 죽는 시계다. 그러나 밥만 잘 주면 정확하게 시간을 맞춘다.
나는,
이 책에서 리스트의 '순례의 해'와 그가 사랑한 '태그호이어' 시계가 주제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프란츠 리스트의 작곡집 <순례의 해> 중 향수 는 프랑스어로 '르말 뒤 페이'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