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5

by 미셸 오

초등학교 4학년까지, 나는

말괄량이 기질이 다분하고 아이들과 뛰어노는데도 시간이 모자랐다.

물론 공부는 뒷전이었다. 학교서 숙제를 내주어도 완전히 까먹고 학교에 가서야

숙제검사 때 깨우쳤다. 아. 숙제를 안 했구나.

그래서 숙제검사하는 날과 성적표 받는 날이 네겐 지옥과도 같았다.

숙제를 안 해가면 선생님들은 회초리를 들거나 대놓고 면박을 주고 미워하였다.

해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다.


우리 동네는 여기저기 찾아볼 곳이 많았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산에서 바다까지 흘러내리는 숨은 계곡도 있었다.

해서 일단 집에 오면 나는 동생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다. 오로지 자기만의 재미에 빠져사는 그런 아이?

그리하여 친구들과 놀러 가는 데 동생들이 따라붙으면 잽싸게 딴 데 보라고

해놓곤 우다다다 달려가버린다. 내 재빠른 달리기를 못 따르는 동생들은 멀리서

울음을 터트린다. 동생들이 따라가면 왠지 불안하다. 내가 신나게 못 놀까 봐.


구구단을 외던 수업시간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2학년, 우리 반은 교실이 모자란 관계로 학교 도서관이 교실이었는데

여러 명이 빙 둘러앉아 수업을 받았다.

햇살이 책 장 사이로 비쳐드는 그 교실은 책냄새로 가득 차서 알 수 없는 설렘을 주었다.

때는 한창 구구단을 외우던 산수 시간이었다.

4단에서 6단까지는 잘 외웠는데 7단부터 좀 덜 외운 상태.

구구단을 못 외우면 집에 못 가고 남아야 된다. 키가 멀대같이 크고 눈이 퉁방울만한 남자

담임은 반 아이들에게 한 사람씩 구구단을 시켜보고 합격하면 집에 보내 주었다.


그날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집에 일찍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아직 완벽하게 다 외우지 못하였다.

아니 구구단을 외울 생각조차 안 했다. 고개를 숙이니 선생님의 다리가 보였다.

나는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고 7단인가? 거기서 좀 주춤하려던 찰나! 내 옆 짝지가 자신의 책받침을 내게 슬쩍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자기가 보는 것처럼 해서 내가 볼 수 있도록 책받침을 내쪽으로 기울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외우는 척하며 책받침에 적힌 구구단을 읽어 내렸다.

합격~!

그 친구 덕에 나는 얼른 책가방을 챙겨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완전히 해방된 느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친구의 얼굴이 자세히 생각난다. 눈이 밝고 착하게 생긴 그 친구.

고맙다는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는 구구단 암기에 합격했을까? 날 기억할까?


공부하는 것은 싫었지만

쉬는 시간에 고무줄놀이는 선수였다. 편 가르기를 해서 내가 들어간 편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아이들이 발끝을 모으고 고무줄을 머리 위로 한껏 들어 올려봤자 나는 팔을 땅에 짚으면서

완벽하게 공주회전~텀블링을 하면서 발로 고무줄을 낚아채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머리를 짜냈다. 나를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그런 아이.. 그걸 아이들의 용어로 지칭하는

것이 있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건달구시(?)라고 했던 거 같기도 하고.


우리 동네 위 비포장 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린 후 차가 거의 다니지 않던 그 길은

나와 동생의 운동장이었다. 길 저쪽에서 이쪽까지 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텀블링을 하며 나아간다.

그렇다. 지금 같으면 마루체조하는 선수들처럼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몸이 따라주었다.

산에 오를 때도 담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릴 때도 나는 바람처럼 몸을 날리곤 했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산바람이나 바닷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휘날릴 때 나는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면서 냅다 뛰어내리거나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놀다가는 집에도 가지 않고 곧바로 친구집에 놀러 가서 밤늦도록 텔레비전을 보다가

온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진 엄마나 아버지에게 끌려들어 가기를 여러 번.


하루는 먼 동네까지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혹시나 딸이 행방불명된 줄 알고

나를 찾아 나선 아버지는 그날은 날 꾸짖지 않았다. 딸을 잃어버렸을까 봐 꽤 마음을 졸였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놀기에도 시간이 없던 내게 학교는 시간낭비. 공부할 시간은 더더욱 없었으므로 공부는

우리 부모님이 인정할 만한 성적이 나올 리 없었다.

성적표를 받은 날이면 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문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보여주는 것만큼 두려운 것이 있을까.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성적에 연연해서 공부를 못하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다.


나중엔 안 되겠던지 우리를 붙잡고 산수를 가르쳤는데 워낙 무섭게 다그치는 바람에 답을 틀릴 까봐

문제를 못 풀고 덜덜 떨면서 배웠다. 쉽게 풀 수 있는 것도 회초리를 들고 앞에 앉은 아버지 눈치 보느라

바빠서 문제에 집중을 못하겠더란 것이다.

덕분에 5학년부터는 공부를 좀 했지만 뭐 이해를 하고 푼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강제로 집어넣은 것들로

인한 것이었을 뿐. 내가 공부의 맛을 깨닫게 된 건 중학교에 가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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