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동네는 고갈산 아래 바다를 바로 코 앞에 끼고 있었다, 말하자면 산 맨 끝 바닷가 마을이었던 셈이다. 일제 강점기 이전엔 학이 놀았다 해서 봉래산이라 했었는데 일제 때 고갈산이라 이름을 바꿨다는 것을 대학교에 가서야 알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산에 나무는 없고 온통 바위투성이어서 이름도 걸맞게 고갈산인가 보다 했었다.
그때 동네에서 가장 빛난 건 기와집하고 동네 공동 우물이었다.
특히 기와집은 지붕까지 올라간 무화과나무와 꽃나무. 평상 위로는 포도나무줄기가 그늘을 짓고 집 뒤편은 탱자나무 울타리가 빽빽하였다. 기와집 담장아래는 노랗고 하얀 국화송이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더기로 쓰러져 있거나 봉숭아 혹은 진달래가 오종종하니 피어있거나 토종 맨드라미가 땡볕에 반들반들 낯을 붉혔다. 큰 장독들이 가득한 장독대와 검은 솥이 걸린 부엌과 비례해 긴 대청마루를 앞으로 한 방만 다섯 개였고 두 개의 큰 방만 빼고 각 방에는 세를 놓았는데 우리 가족도 한 때 그 집에 세 들어 살았다고 이전 글에서 언급하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기와집에 사는 주인남자였다.
주인은 키가 매우 컸고 인물도 썩 좋았다. 얼마 없는 머리를 기름을 발라 넘기고 훤하고 잘 생긴 이마가 반질반질 윤이 났다. 쌍꺼풀 진 부리부리한 큰 눈과 꼭 다문 입술은 입꼬리가 위로 향해 그야말로 재복이 있다던 상이 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잘생김은 특히 매의 부리처럼 휘어진 높은 코였다. 그의 잘 휘어진 코는 그의 치켜진 눈과 함께 매섭고도 사나운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술을 먹기 전후의 그의 모습은 딴판이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다. 평소 뒷짐을 지고 "어흠 어흠" 하며 길을 걷는 그는 무척 근엄해 보여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술만 취하면 그의 그런 근엄함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거짓말을 해서 동네 사람들끼리 싸움을 붙이고 아내를 때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구박하였다.
그런데 가끔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면 기적처럼 자신의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무화과 열매를 장대로 직접 따서 주는 경우도 있었고 안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밤늦도록 틀어 놓고 온 동네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마당에 평상을 내어주는 경우도 있어 종잡을 수 없는 복잡한 내면의 소유자라는 느낌을 주었다.
기와집 뒤로는 슬래트 집이나 초가집들이 계단식으로 한 채씩 자리를 잡았고 45도 각도의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면 그 오르막길 끝에는 점방이 있고 그 점방 옆 계단을 다섯 개만 오르면 새로 낸 아스팔트 길이 나타났다. 동네에서 오직 하나였던 그 점방에서는 아이스케키, 라면땅 같은 과자류 그리고 술도 팔았다.
그 점방 뒤에 초가집이 한 채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초가를 허문다는 소식이 돌았다. 동네는 이제 하나 둘 초가집을 허물고 슬레이트나 양옥집으로 바뀌는 추세였던 것이다.
소문은 빠르게 돌고 돌아 동네의 여자, 남자, 노인, 아이들까지 초가의 지붕만 보이는 점방 앞으로 몰려들 갔다. 그러나 초가집 지붕은 누런 먼지를 풀썩 내더니 사람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초가집이 이미 헐린 것도 몰랐다.
"집이 벌써 무너졌다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응? 벌써? 집이 허물어졌어? 어디 어디?"
아이들과 어른들은 눈을 꿈벅꿈벅하며 사라진 초가집의 지붕 대신 점방 슬레이트 지붕 위로 뿌옇게 떠오른 노란 먼지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점방 옆 초가집으로 난 좁은 골목길에서 기와집 매부리코가 걸어 나왔다. 그런데 순간 사람들은 다시 눈을 꿈뻑이며 자신들이 보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나도 뚜렷하게 기와집주인의 한쪽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30센티 정도의 붉은 뱀이 각인되었다. 사람들이 미처 놀라기도 전의 짧은 순간이었다.
매부리코가 입술 한쪽을 찌그러뜨리며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순간 뱀의 머리 어딘가를 잡더니 확 잡아당겨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뱀의 피에 젖은 하얀 몸뚱이가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 껍질이 홀랑 벗겨진 그것은 그의 손 아래서 미친 듯이 널을 뛰었다. 아무도 말을 못 했다. 그 끔찍한 뱀의 몸부림 앞에서. 또 그렇듯 빠른 속도로 살점 하나도 뜯김 없이 완벽하게 껍질을 벗겨낼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다만 침묵할 뿐이었다. 그는 벌거숭이 뱀을 가게로 들고 가더니 바가지의 물로 위로부터 가볍게 씻어 내리며 안주인에게 도마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가게 주모는 놀랄 겨를도 없이 허둥대며 도마를 가져왔고 그는 뱀을 순식간에 토막 내었다. 하얀 접시에 담긴 뱀 토막. 동강 난 그것들이 접시 위에서 헤엄을 쳤다.
어른과 아이들은 가게 문 앞에 몰려들어 능숙한 뱀의 조련사... 아니 뱀의 천적을... 또한 뱀의 수난사를 보며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몰려든 사람들의 눈길에는 아랑곳없이 그는 주모가 내어준 소주 반 병에 뱀사시미를 안주 삼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술에 붉게 타오른 매부리코는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젓가락으로 뱀 토막을 집을 때마다 무언가를 비웃는 듯한 눈빛과 함께 한쪽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며 찌그러지곤 했다. 뱀은 그의 입안에서 알코올과 함께 녹아버렸는지 씹지도 않는 듯하였다.
낡은 초가집 지붕에서 똬리를 틀며 종족번식의 꿈을 꾸었을 뱀은 그렇게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고 매부리코가 가차 없이 버린 그것의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시궁창에 휩쓸렸다. 생뱀 한 접시를 말끔히 다 비운 그는 알딸딸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조금은 아쉬운 듯 입을 쩍 다시며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셨다.
동네 공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풀숲으로 재빠르게 도망치는 뱀 꼬리를 보면 간담이 서늘해서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오고 장맛비가 온 후면 우물 안으로 뱀들이 쓸려 들어가 여자들이 우물 안의 물을 다 퍼내고 수세미로 닦아낸 것 하며. 논두렁 풀숲에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뱀 새끼들이 너무 많아 풀숲에 발 디디는 것도 두려웠던 시절에, 한 인간의 손에 들려 덜렁대던 뱀의 몸뚱이는 잊히지 않는 장면으로 남았다.
후일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 허물어진 초가집도 점방 건물도 매부리코의 소유였다는 것이었다.
또 이어진 소식에 의하면 그 집에 살던 늙은 종이 죽고 딱 1년 후 그 기와집주인도 세상을 떠났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