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운동회-4

by 미셸 오

내 동생은 지금 태권도 8단. 검도 8단의 무술인이다.

그렇지만 얼굴은 신사처럼 생기고 말도 상당히 부드럽고 예의 발라서

첫 만남의 사람들에게 젠틀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반대로 나는 목청도 크고 흥분하면 목소리가 한없이 커지기 때문에 조곤조곤 속삭이듯

말하는 친구들은 내가 이야기에 흥이 나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하는

눈빛을 준다. 난 속삭이듯이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좀 어렵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한껏 그들 앞으로 온 신경을 집중해야 되니까 말이다.


동생은 관광 경영학을 전공해서 호텔에 근무했었는데,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직업이라고나 할까. 짙은 색 양복을 차려입고 예의 바르게 손님을 맞이하는 동생의 모습은

호텔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휴가 때면 동생 덕분에 비싼 호텔에 투숙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았으니 나로서는 정말 고급진 휴가였는데 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곳에서도 동생의 지위가 높아지려면 더 나은 능력이 필요했다.

그는 영어실력을 높이려고 호주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그만 그곳에 정착하고 말았다.

태권도로 호주를 정복하려고 마음먹게 된 것이었다. 해서 그동안 다녔던 호텔도 그만두었다.

하지만 낯선 타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일으킨다는 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역사가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그동안의 그의 고생은 또 하나의 인생사가 되리라.


사람들의 성공뒤에는 남모를 고통의 시간과 인내의 시간이 숨겨져 있다.

이 정도 해두고 동생의 초등학교 때 이야기를 써보겠다.

앞 편에서도 썼지만 학교 다닐 때 운동회만큼 맘을 설레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동삼초등학교 때-그땐 국민학교- 운동회 날은 아침부터 아이들의 마음은 하늘을 날았다.

운동회 날 아침에 학교에 가면 신나는 음악이 틀어져 있고 하늘에는 만국기들이 실에 얽혀 흔들리고 운동장에는 굵은소금이 뿌려지고 또 하얀색으로 굵은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하의는 파란색, 상의는 파란색 카라에 흰색의 하얀 체육복을 입었다. 전교생은 운동장에 모여 호루라기를 부는 선생님을 따라 국민체조를 하면서 운동회의 시작을 알렸다.

스피커에서 전국 체조 음악이 신나게 흘러나왔다.


"따다단따 딴따 따다단 따다~~"


음악에 맞춰 선생님이 호각을 불었다.


"하낫 둘-하낫 둘--차려엇~ 열중 셔어엇~!"


백군과 청군으로 나뉜 아이들이 청백의 머리띠를 두르고 운동장 가에 따로 모여서 시합준비를 한다. 이때부터 서서히 도시락 가방이며 음식을 가득 싼 보따리를 든 학부형들이 교문 안으로 터질 듯이 밀려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장 벤치에서 보면 학교 대문 앞에서부터 리어카 장사꾼들이 열을 짓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노랫소리와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바글바글 끓었다.


제주도 성산포 앞바다를 보면서 치렀던 내 첫 운동회 때는 학생수보다 운동장이 한없이

넓어서 그다지 비좁은 줄 몰랐는데

동삼동 학교는 학생 수에 비해 운동장이 턱 없이 작아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전시간에 1학년의 귀여운 율동을 시작으로 저학년 달리기, 줄다리기, 공 굴리기, 등등 경기가 끝나고 고학년 릴레이가 펼쳐질 차례였다.


운동회의 꽃은 아무래도 릴레이다.

우리 집은 나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운동회 때 달리기 1등을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달리기를 잘했다. 바다에서조차 수영을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바닷물에서 헤엄법을 익히고 먼 데까지 수영을 했을 정도니. 물론 배영이니 접영이니 하는 수영의 기초와는 다른 물에 잘 뜨는 우리들만의 수영법이었지만.

엄마 역시 운동회 때마다 학부모 대표로 뛰었고 1등이었다. 우리 둘의 운동신경은 아마도 엄마 쪽인 듯하다.

5학년 이어달리기가 한창이었다.

운동장을 꽉 채운 함성소리가 절정을 달하고 있었다.

청군이 계주 달리기에서 계속 앞서는 중이었다.

그런데 4번째였던가.

청군 여학생이 달리기에 지쳤는지 헉헉대며 바통 터치 지점을 얼마 안 남기고 뒤쳐지고 있었다. 그때 백군 쪽에서 와아 하면서 미친 듯이 아이들이 응원하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백군 여학생이 질주하며 따라붙기 시작했다. 청군 여학생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뛰던 발걸음이 더 느려졌다. 마침 동생이 청군의 마지막 주자로 대기 중이었고 뒤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백군 아이가 그 여학생을 앞지르려고 하였다.

청군 쪽에서 안타까운 탄식소리가 나오고 백군 쪽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어떤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남동생이 자신의 이마에 묶었던 청색 머리끈을 풀어서 뒤처지는 여학생에게로 달려가 그 끈을 잡게

하고는 빛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관중석에서 와아 하는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였고 남학생의 머리끈을 붙잡은 여학생은

드디어 앞서 달리는 남학생의 힘에 의지해 라인에 도착했다.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주자였던 동생이 바람처럼 속도를 내며 달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생은 그렇게 청군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난 운동장을 달리는 동생의 훌쩍 큰 키를 보면서 어느새 나보다 키가 커진 동생의 모습을 발견했다.


청군 응원석에서는 와~하는 함성이 운동장을 한참이나 가득 채웠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관중석의 어른들은 이 멋들어진 아들이 누구 집 아들인가 거참 대단하군 하는 표정들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감동하며 뿌듯해하였다.


난 그때 남동생의 재빠른 행동과 함께 동생의 손에 이끌려 달음박질하던 여학생의 모습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처럼 짙게 남았다. 내 인생에서 빛나고 자랑스러웠던 동생의 어릴 적 모습이다.

아직도 학교서 운동회를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1970년대의 운동회는

늘 가을에 열렸기 때문에 하늘은 높았고 바람은 선선했다.

놀거리가 없던 우리들에게 운동회만큼 신나는 축제는 없었다.


그해 가을 운동회 점심시간에는 잘난 아들을 둔 엄마에게 관심이 집중되었고

엄마는 자신이 만들어 온 도시락들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나도 이렇게 기억을 잘하는데

아들 사랑이 유난했던 엄마는 오죽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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