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린,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속에는 끝없는 사랑 만큼이나 불안과 걱정이 많다. 모든 걱정과 불안은 결국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서, 이제는 부모의 손길이 더이상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없는 시간이 온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아온 세상, 따뜻함도 많았지만 결코 녹록하지만은 않은 이 세상을- 연약한 네가 홀로 맞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양육하는 과정은 아이가 홀로 세상을 마주하게 될 때를 준비하는 긴 과정일지 모른다. 쉽지 않은 그 때를 대비해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을 뿌리와 자신감,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자산을 축적해 놓을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아름다운 이야기 이면에 숨은 지독한 성장 이야기
많은 청소년 문학은 '성장 이야기'다.
어리고 미숙한 존재가 어떤 역경을 겪고 나서 보다 성숙한 자아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맨 부커 상>을 수상한 '얀 마텔'의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라이브 오브 파이>도 일종의 성장 이야기다. '성장'을 넘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를, 지독한 통과의례의 이야기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들은 동물들을 배에 싣고 이민길에 오른 도중에 바다 위에서 폭풍을 만나고 배는 침몰하게 된다. 주인공 소년 '파이'는 몇 마리의 동물과 함께 구명보트에 올라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문제는 이 중에 큰 호랑이가 있었던 것이다. 망망대해 위 작은 보트에 갇혀, 언제까지 표류하는지 모르게 흘러가는 운명...
무엇보다 맹수와 단 둘인 상황에서 생존해야 하는 소년.
이 배가 흘러 흘러 닿는 이름 모를 섬과 육지들.
영화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상의 끝을 스크린 위에 구현해 낸다.
이 이야기의 원작이 어린이만을 위한 동화가 아니었던 것처럼 이 영화 또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전체관람가 등급은 어린이가 보아도 무방하지만, 어린이가 작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판단과는 다를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보는 이에 따라, 또 관점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화려한 화면으로 꾸며낸 환상적인 3D영화로 즐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인생의 진실을 담은 우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다.
게다가 영화의 결말에선 뭐라고 딱 부러진 결말을 내지도 않는다. 인생에 정답이 없고, 우리가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냐에 대한 정답도 없는 것처럼 이 이야기를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대답엔 정답이 없다고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이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충분히 좋은 영화 경험이 될 것이다.
"나는 넓디넓은 바다 위에 자그만 나무배를 타고 있는 소년입니다.
나 혼자의 힘으로 이 배를 원하는 곳으로 저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배 안에는 나를 잡아먹고도 남을 호랑이 한 마리까지 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운명은 어차피 끝난 것일까요?
그런데 조그마한 희망은 있습니다.
어차피 호랑이의 처지도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변화하는 '파이'의 모습은 어린이와 어른, 우리 모두에게 각자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줄 것입니다.
영화 경험에서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시각적인 경험일텐데, <라이프 오브 파이>는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등 네 부문에서 수상했다.
특히 벵갈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실제 호랑이와 CG를 함께 사용해 지극히 현실적인 움직임을 눈 앞에 만들어냈다.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듯한 상상 속의 세계를 너무나 멋지게 만들어낸 장면들 덕분에 두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