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디지털노마드 - 왜 알아보고 있어?
2016년 7월 21일, 뉴욕 맨하탄
Kiva 라는 비영리단체가 있다. 알게 된 것은 아마도 5년전쯤 대학원에 있었을 때 였던 것 같은데, 개발도상국 혹은 후진국의 개인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단체다. 개인들이 자립과 현재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종잣돈으로 비료를 사는데, 작은 가게를 여는데,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데 필요한 돈은 작게는 $100 에서 많아야 $2,000 정도로 생각보다 크지 않은 돈들이기에 선진국의 많은 이들이 crowd funding 형식으로 빌려주고, 그들이 자립하고 난 뒤에 갚는 정말 획기적인 구조였다.
비영리 단체이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고 그 이후에는 카드 섹션 뉴스 같은 것으로 접하고는 했는데 최근에 연락 온 스타트업 중에 Kiva 의 co-founder 가 만든 회사가 있었다. 이것도 이 사람이 만든 줄 몰랐는데, 케냐를 비롯한 아직 금융망이 발달하지 않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이 먼저 보급되기 시작함에 따라서 지점 없이 휴대폰과 앱만으로 인터넷 뱅크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기업이었다. 사실 이 기업도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고, 무엇보다 Kiva 의 파운더가 세웠고, salary 와 equity 수준도 훌륭해서 이야기나 해보자 싶어서 연락온 Matt 라는 담당자와 엊그제 통화를 했다.
인사담당자나 리쿠르터와 통화 할 때 늘 그렇듯이, 상대 회사가 어떤 회사고, 무슨 일을 하고, 내가 궁금한 점들 잔뜩 질문을 하고, 나는 어떤 백그라운드고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뿔싸 .... 나는 내 숙제를 많이 하지 않고 하는 통화였는데 상대방이었던 Matt 가 ... Matt Flannery, Kiva 의 공동 창업자이자 Branch 의 창업자 본인이었다.
사실 이름을 구글에 긁어본 것도 통화가 끝난 다음이었고, 통화하면서 차분한 목소리와 카리스마에 5년 전 대학원때 당시에는 (내가 잘 몰랐던지라) 그냥 앱 만드는 회사 중 하나였던 WhatsApp 의 Founder 랑 통화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소름이 돋았는데 실제 대표였다니. -_-;
미국에서, 그리고 실리콘밸리 베이스 회사들에서 일하면서 했던 나름의 놀라운 경험들 중 하나가 이런 분들하고 바로 통화하고 이야기 할 일이 생긴다는 것. 그런 기회들을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해서 아쉽지만, 다음에는 더 잘 잡을 수 있도록.
내가 100억대 자산가가 될 수 있었던 기회도 분명히 지나갔었으니..
https://brunch.co.kr/@zechery/104
*
내 숙제가 덜 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상대방도 내가 한 일을 줄줄 설명하니까 "아 이건 인터뷰는 아니고, 그냥 너도 우리 회사를 알게 되서 관심이 있으면 인터뷰를 셋업하기 위해 하는 통화니까" 라고 했지만서도 뭔가 되게 미안했다. 이런 사람이랑 20분이나 통화를 하면서 시간을 쓰게 만들면서 내 숙제가 덜 된 상황이란게.
다행히 실제로 궁금한게 많았고, Kiva 찬양도 좀 하고 ㅋㅋㅋ 이 서비스도 들어본 적이 있어서 이것 저것 물어봤는데, 오히려 역으로 들어온 핵심 질문 하나에 좀 움찔했다.
"근데 지금 회사에서 원격 근무를 지원해 주는 중이면 완전 환상적인 것 같은데 왜 알아보는거야?"
다행히 진짜 솔직하게, Kiva 부터 너무 좋은 서비스라 생각했고 Branch 의 아이디어나 BM 도 훌륭하고, (물어본 결과) 무엇보다 현재 엔지니어링 팀이 10명도 안 되는 작은 팀인 것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음, 근데 나도 찔려서 당장 면접 보자고는 못 했고, 내가 다음주에 샌프란을 간다고 했더니 자기네 오피스 2nd and Howard 에 있으니 (고프로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 시간되면 들리라고 이야기 해줌.
진짜 오랜만에 내가 통화하고 겁나 미안하고 알게 모르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음 -_-;;; 아 근데 감이 겁나 좋은 회사이긴 함. 현재 상태는 케냐 나이로비에 Customer Support 하는 직원이 30명, SF HQ 에 10명 정도의 팀으로 Android 서비스만 하고 있다고 하네요. 현재 케냐의 경우 80% 정도의 핸드폰 보급율에 그중 10% 정도가 스마트폰이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 주변국 한개에도 진출 예정이고, 따라서 현재 스택은 RoR, Python, Java (Android) 라고 하는데 매력은 쩌는데 아직 원격을 포기 할 수가 없셈...
어지간한 회사면 가보고, 사람 만나보고 싶어서 오피스 방문해도 되겠냐고 물어보겠는데 면접이나 이직 할 의향이 없이 가보는건 민폐 같기도 해서 고민 중. 근데 진짜 묘하게 WhatsApp founder 랑 전화 통화 했을 때랑 비슷한 이 느낌. 이 느낌이 통화 끊고 구글링 한 다음에 손을 덜덜덜 떨게 만들었음. 와... 샌프란 가기전까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나야 상대방이 시간 내준다고 하면 만나는데 손해 볼 것은 없으니. (설마 빈말은 아니었겠지-_-)
*
실제로 만나지는 않았다. 이직 의사가 아예 없는 상황에서 만나봐야 상대방의 시간을 뺐는 것이라는 판단으로, 관심은 있으나 상황이 바뀌면 연락하겠다고 알렸다.
WhatsApp 과 Lyft 에 이어, 후덜덜한 분과 직접 통화해본 몇 안되는 경험이자, 원격근무라는 형태가 벌써 나한테 얼마나 큰 행복과 만족감을 주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