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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쿡인노동자 Sep 12. 2019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 킬링필드

실리콘밸리의 디지털노마드 - 역사

2016년 9월 2일, 캄보디아 프놈펜


* 오늘 글은 임산부나 노약자, 혹은 무섭고 잔인한 것들에 대해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잔인한 사진이나 영상은 없지만,  킬링필드에 대한 잔인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밤새워 업무를 마친 뒤, 잠 대신 밖으로 나갔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가장 큰 킬링필드 중 하나와 고문박물관을 보러 갔다. 툭툭이를 타고 달려서 도착한 곳에서 우울함과 잔인한 역사에 몰입되는 경험을 하고 왔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고문박물관, 소년이 온다, 서강대학교 그리고 오늘 저녁. 생각의 나열들, 언제나 그렇듯이 스압.


툭툭이를 타면 이런 느낌입니다 (영상)


1) 캄보디아에서는 1970년대 공산주의 독재정권하에 대학살이 일어났다. 흔히 알고 있는 킬링필드는 그런 일이 있어났던 현장을 의미하고, 대부분의 킬링필드에는 추모를 위한 시설이 조성되어있다. 작은 경우 10여구에서 큰 곳의 경우 1천여구 이상의 유골이 발견되고, 발견되고 있고 이런 크고 작은 킬링필드가 캄보디아 전역에 수도 없이 발견되고,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너무 많은 숫자가 학살이 되어서 (200만명 이상)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비가 내리면 새로 나오는 유골을 수습하고, 또 새로운 킬링필드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450여명이 피해자가 집단 매장된 묘


2) 수도 프놈펜 근처에 있는 킬링필드가 가장 큰 킬링필드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곳은 한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로 오디오를 제공해서, 이를 들으면서 각자 지정되어 있는 코스를 돌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기계식으로 발음 하는 것이 아닌, 다큐멘터리 성우의 목소리로 분위기에 맞춰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학살의 참상과 우울함, 그 피해를 고스란히 전해 느낄 수 있게 되어있다. 날이 덥고 전부 둘러보려면 서너시간 걸리지만 혹여나 가게 된다면 꼭 오디오를 들으면서 차분하게 한바퀴를 다 돌아보시기를 추천드린다.


하나하나 끔찍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함께 한다


3) 그리고 프놈펜에는 고문박물관 ... 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킬링필드에 끌려가 처형 당하기 전에 사람들이 강제로 수용되어 고문을 당하던 곳이 있다. 이 역시 오디오로 들으면서 당시의 참상을 생생히 전해 들을 수 있는데, 우울한 내용이지만 캄보디아나 프놈펜에 올 일이 있다면 꼭 들리라고 해주고 싶은 곳들.


어떤 고문 기구들이 어떻게 사용되었고,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알 수 있다


4) 정말 이유도, 밑도 끝도 없는 잔인한 학살의 배경, 그리고 그 주동자들의 실제 증언, 생존자의 증언 등 풍부한 오디오 자료가 불편한 사실에 대한 몰입을 돕는다. 그 생생한 잔인함에 - 예를 들면 나무가 하나 있는데 어린 애기들을 어머니들한테 빼앗아서 눈 앞에서 다리를 들고 머리를 나무에 내치는 방식으로 죽였다는, 그 나무가 그대로 있다. 그 나무에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잔인한 증거들이 지금도 계속 새로 발견되고, 그 앞의 큰 구덩이에는 20-30대의 발가벗긴 여자들의 유해가 끊임없이 나온다고 - 정신이 없을 정도. 이런 설명을 듣다보니 얼마전에 읽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지 군부 독재에 의한 학살, 80년 광주. 그 잔인함은 양쪽이 누구한테도, 불행하게도 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고 나니 한층 더 몰입해서 보게 되었고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 이게 그 나무다


글을 쓰려고 찾다가 위의 나무 사진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 그때의 역겨움이 고스란히 올라왔다. 그리고 사진속에서 찾은 아래의 나무는 ... 기본적으로 이쪽의 나무 중에 이렇게 생긴 나무들이 있어서 따로 흉기가 필요없었다고 한다. 날카롭고, 뾰족하고, 울퉁불퉁해서.


이런 나무에 사람을 집어던졌다고 한다


5) 대학살 당시 기본적으로 지식인 층이 전멸한 캄보디아는 현재 지난한 인적 자원의 복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살의 타겟이 기본적으로 지식인 층이었어서 손이 고운 사람, 안경을 쓴 사람, 학력이 높은 사람, 의사, 교사 등등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여서 절멸을 시켜서 식자층이 문자 그대로 절멸된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나의 모교 서강대학교에서는 캄보디아 첫 여성 수학 박사가 배출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먼 나라 캄보디아의 40년전의 대학살과 내가 그리 멀지 않게 연결이 되어있는. (서강대에서 석·박사 마친 캄보디아 女수학박사 1호 소니 찬)


당시의 크메르 루주의 리더들, 리더들 중에 안경 낀 사람이 있다 (...)


6) 저녁에는 승완이의 회사 동료 두분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아직 크메르식 (캄보디아식) 음식을 먹어보지 않아서 나의 문화체험(!) 겸 승완이가 초대를 해줬는데, 음식도 맛있었지만 (사실 디저트로 시켰던 따뜻한 코코넛 물에 바나나를 살짝 끓인 녀석은 진짜 맛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둘의 유창한 영어 실력. 이제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한지 얼마 안 된 분들인데 기본적으로 영어 구사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둘 다 영어권 국가를 가본적이 없다고 하는데 한명은 발음과 인토네이션마저 훌륭해서 매우 감탄했다. 내가 너무 신기해서 (난 미국에 n년을 살았는데 어떻게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거지...) 어떻게 이렇게 영어를 fluent 하게 하냐고 했더니 자기 전공이 영어라고 했으나, 겸손인듯 하고 엄청난 탈렌트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다른 한명은 일본어를 한다고 하고 (일본 아니메와 망가를 많이 본듯하다 ㅎㅎㅎ) 다른 한명은 중국어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어를 하는 쪽은 (영어 발음 좋았던 쪽) 한국어도 아주 조금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봐서 안다고 하는데 중간 중간 한국어를 한두마디 할 때 한국 사람이 같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한국어를 한두마디하는 수준이 아니라 지금 이 글 읽으면 90% 이상 이해하는 수준정도이지 싶다.


(아.. 얌전떤다고 크메르 음식들 사진이 없는 것 같다. 분명히 찍었을 것 같은데... ㅠ_ㅠ)


7) 이런 친구들이 캄보디아의 재건되가는 지식인층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잘 주어지면 이런 친구들은 더 큰 기회를 잡아서 더 크고 재밌는 일을 하다가 본인이 원하면 다시 돌아와 기여를 하는 방식으로 뭔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내 일도 아니지만 그런 기대감이 들었다. 장학금은 이런 친구들한테 돌아가야 가장 큰 쓸모를 하지 않을까 싶은 친구들이었다.


8) 킬링필드와 고문박물관을 다녀온지 5일. 한달을 머물면서 승완이 덕분에 단순히 관광객으로만 지나가지는 않게 되어서 좋기도 하고, 씁쓸한 역사의 반복과 여러 나라에 copy and paste 로 벌어진 학살에 참 씁쓸하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랬듯이 이 나라도 어느 부분은 치유하고 회복하고 있는 중이길.


고문박물관에서 나오기 직전에 (영상)


*


그리고 덤으로 유승완은 파견 2개월만에 기초적인 캄보디아어를 한다. 본인이 공부하고 현지 직원들과 일하면서 띄엄 띄엄 단어만 아는거라고 하지만, 기본 문법을 설명 할 줄 알고, 꽤 많은 기초 명사와 동사들을 알고 있어서 이어서 말을 하면 현지인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된다. 듣도보도 못했을 낯선 언어를, 그리고 다음에 언제 또 쓸 수 있을지 모르는 이 언어를 2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써먹어서 이렇게 기초적인 이야기를 듣고 할 수 있음이 신기하고 존경스러움. 역시 짱짱 멋진 유승완님.


이제 하루자고나면 미국의 노동절 연휴가 시작되니 여행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갔었던 킬링필드와 고문박물관은 그 몰입된 경험 때문인지 가장 인상 깊은 곳 중에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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