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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7. 2024

에어맨은 쓰러지지 않아 V

에어맨(5) : No.1  36mm & 40mm 리뷰 




1. No.1의 오리지널 모델


에어맨은 1953년 등장한 이후 2014년까지 29가지 버전이 나왔습니다.


이 중 마지막인 No.1은 1세대(1953년~1978년)로 분류되는 모델의 Re-edition입니다. 


1세대에서는 이후 60여년간 진행될 에어맨의 기본틀이 마련되었는데, 특히 핸즈모양은 1953년 칼(Dauphine), 1955년 주사기(Syringe)를 거쳐 1957년에 화살(Arrow)모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참고로 롤렉스(턴오그래프)와 블랑팡(피프티패덤즈)의 최초 회전베젤도 1953년에 등장했고, 오메가(스피드마스터)의 에로우 핸즈도 1957년에 시작됐습니다. 


이를 보면 에어맨이 맥락 없이 튀어나온게 아니라 동시대 기술이나 유행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시계란 생각이 듭니다.


핸즈나 인덱스 모양 등을 봤을 때 No.1은 1세대 중에서도 1957년 모델을 재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발매된 모델의 경우 36mm, 유광 마감, 10atm, AIRMAN No.1이라고 새겨진 케이스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2018년에는 무광 마감으로 재발행(Reissue) 되었습니다.





2. 재발행모델의 특징


재발행모델은 크게 36mm와 40mm로 나뉩니다.


각각 블랙다이얼과 크림색 다이얼, Purist버젼과 GMT핸즈 버전이 있으며, 레퍼런스별로 1천개 한정판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재발행 에어맨은 유광에서 무광으로 마감이 바뀐 것 외에도 방수표시가 10atm에서 1atm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1atm은 지난번에 얘기했던 회사를 말아먹은 경영진이 기술이나 방수 표기 기준은 무시한 채 오로지 과거팔이 마케팅에만 신경쓴 흔적일 뿐이고, 2014년과 구조적으로 달라진 게 없으니 실제로는 10atm이라는 게 중론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기계에 넣고 테스트해봤더니 최소 3atm이상은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계방 사장님이 글라스 두께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 없이 테스트하다 보면 망가질 수도 있다고 해서 여기까지만 확인했지만, 생활 방수에 문제가 없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3. GMT와 Purist


저는 36mm-블랙-GMT버젼(GL0158)과 40mm-블랙-Purist버젼(GL0163)이 있는데, 두 시계는 모양만 비슷하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시계입니다. 



GMT버젼은 시침이 하루에 두 번 돌아가는 12시간 방식이고, Purist버젼은 시침이 하루에 한 번 도는 24시간 방식입니다. 


에어맨은 애초에 24시간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이 시계의 모든 요소들을 제대로 감상하고자 한다면 Purist가 적합합니다. 


예를 들어 Purist에서 시침 꼬리가 가리키는 숫자를 보면 굳이 머릿속으로 덧셈 뺄셈을 하지 않아도 24시간을 쉽게 12시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근데 GMT로 가면 이 기능이 사족이 되어버립니다.


Purist는 생활계획표처럼 하루를 한 번에 펼쳐놓고 인식하며, 24시간으로 표시된 기차나 비행기 예약시간을 확인하는데 편리합니다. 


베젤을 이용해서 다른 나라가 지금 몇 시인지도 바로 알 수 있는데, 이는 회전베젤 시계들 중에서 베젤을 가장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시계 대부분은 12시간제로 만들어집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메소포타미아의 12진법이나 기하학적 편리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등장하지만, 제 생각엔 24시간 시계는 시간당 각도가 너무 작아 시간을 읽기가 불편하고 이미 12시간제로 굳어진 문화적 습관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때문에 12시간제를 기본으로 하는 롤렉스 방식이 GMT시계의 표준을 장악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에어맨은 1998년에 들어서야 이 방식을 도입했는데, 애초에 24시간제로 디자인된 다이얼을 그대로 유지한 채 12시간제를 적용하다 보니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12시간과 24시간을 함께 볼 수 있고 3가지 시간대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4. 기타 소소한 특징들


검정 다이얼에 흰색텍스트, 무광 스틸 베젤 덕분인지 전반적인 분위기는 밀리터리워치에 가깝습니다. 


이는 2차대전 네비게이터의 스타일을 그대로 계승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스트랩으로 가죽줄 보다는 캐블라나 캔버스같은 소재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No.1은 크기가 작고 군더더기를 제거한 날씬한 케이스를 가지고 있어 가벼운 편입니다. 


시계 본체만 36mm 44.5g, 40mm 54.5g이고 스트랩 10~15g이 더해져도 70g이 안되니 저한테도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입니다.



36GMT는 세월이 완성한 오리지널 비례에 돔글라스를 갖고 있습니다. 


50년대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왔으면 촌스러울 법도 한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회전베젤로 윤곽이 강조되고 세로길이가 44mm로 긴 덕분인지 다른 36보다 좀 더 커 보입니다. 


숫자가 많은데다 꼬리침까지 5개의 핸즈가 있어 바빠보이지만 전 오히려 그 복잡함에 끌렸습니다.



40Purist는 다이얼이 커지면서 현대적인 항공시계 느낌을 줍니다. 


24시간계의 가독성을 고려하면 에어맨에겐 40mm이상이 적당해 보입니다. 


Purist가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한 시간의 각도와 다르게 움직이다 보니 처음엔 생소한 느낌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시간을 좀 다른 형태로 느낄 수 있습니다.




5. 마무리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에어맨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시계 생활을 하다 보면 사연 많은 시계를 만나서 그 시대나 분야의 흔적을 따라 여행하는 것이 가장 재밌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에어맨은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시계이고, 그중에서도 No.1은 시계산업이 가장 창의적이던 시절인 1950년대 디자인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더 매력적입니다. 


지금은 경영상의 이유로 대접을 못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에어맨의 가치가 사라지거나 낮아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에어맨은 앞으로도 쓰러지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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