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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고집 Aug 10. 2023

달을 보며 6펜스를 떨구다

순수에 대한 갈망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 서머셋 모옴, 달과 6펜스


건축가 조승원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옛 서울여상 한식 교사(1965년 작)의 근경.


인왕산 중턱의 멋진 한식 건물, 서울여상에서 보낸 나의 17세 무렵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뜨거워진다. '고향'이라는 횔덜린의 시 한 구절이 주는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난날 내가 물결치는 것을 보던 서늘한 강가에

지난날 내가 떠가는 배를 보던 흐름의 강가에

이제 곧 나는 서게 되리니 

  

아카시아향이 온통 하얗게 흩날리던 교실의 창가, 구름다리 너머 팔각정에서 울려 퍼지던 피아노 소리, 목련꽃 만발한 뒷동산의 벤치와 작은 폭포, 무악재에서 서대문을 지나 광화문에 이르는 길가에 지금은 사라진 작은 서점에서의 만남들, 음악이 흐르는 광화문 뉴타자 학원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명문장들을 타이핑하며 듣던 앤디 윌리엄즈의 러브스토리, 좁은 그 골목 사이로 수많았던 화실들, 폭죽처럼 무수히 터져 나오던 팝 음악들과 빌보드 차트, 그때 좋아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즐겨 듣는 비지스와 사이먼 앤 가펑클. 자정을 넘어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프로가 모두 끝나면 어둠에 갇혀버린 듯 막막했던 한시 반의 적막. 친구와 교환일기를 나누던 회색노트. 꽃 피는 봄날 눈 내리는 겨울날 교정에서 사진사 아저씨가 찍어준 귀한 흑백 사진들. 백 년이 가도 헤지지 않게 표지를 직접 만들어 친구가 선물한 책, 데미안.

  

그 순수하고 예민한 질풍노도의 시기에 딱딱한 주산을 붙들고 끊임없이 숫자와 싸우고 상업영어 상업법규를 배우고 자산과 부채를 나누며 손익계산서를 작성해야 했던 일, 도무지 알 수 없는 컴퓨터 언어들을 배우며 서툰 명령을 실행하던 일. 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타이프라이터에 앉아 열 개의 손가락에 자판을 익히려 고투하면서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속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일이 너무 외롭고 가혹해서 폭우에 떨어져 내린 플라타너스 잎새처럼 자괴감에 젖어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비슷한 수준의 학우들 속에서 받아 든 성적표는 그간 오로지 상위권 성적만으로 공고했던 자존감을 가차 없이 무너뜨리곤 했다.

  

그래도 태양은 빛나고 있었다. 입시의 부담이 사라지니 오히려 자유로웠고 대기업과 은행들이 악어처럼 입을 벌리고 우리가 쏟아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서 우린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친구는 미술반으로 나는 문예반으로 각자 원하는 교실을 찾아다녔다. 그 해 가을에 열린 문학의 밤에서 서정주 시인을 모시고 마지막 순서로 내가 쓴 수필을 낭독하던 때의 떨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항상 무채색의 옷만을 고집하시던 문예반 선생님의 절제된 삶의 모습과 인품을 흠모하였고, 그 시절 가장 몰입했던 세계사 수업은 훗날 동의대 교수로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내신 이양자 선생님의 열강으로 시간이 어떻게 가버렸는지 늘 아쉽기만 했다. 선생님은 마치 잔다르크처럼 진두에 서서 지적 호기심의 갈증에 시달리던 우리들을 세계사의 중심에 세워 놓고 싸우게 했고, 높은 지성을 사랑하고 추구하게 만들어 자칫 나락에 떨어질 수 있었던 우리의 자존감을 한껏 높여 주셨다.


지적 갈망의 도화선은 우리를 독서로 이끌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안개 낀 슈바벤의 밤거리를 동경하며 걸었고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에 가슴앓이를 했다. 앙드레지드의 좁은 문에선 알리사가 되어 신과 인간의 사랑에 대해 절절이 아파했고 샤르뜨르와 보봐르의 계약결혼에 반해 논쟁을 벌였다. 헤르만 헷세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만나면 늘 화두가 되었고 난해한 니체를 누가 이해하는지 조바심을 내며 경쟁하듯 문학작품들을 읽었다. 훗날 아무런 경제적 기반도 없이 원하는 대학 진학을 위해 회사를 그만둘 결정을 해야 했을 때, 그 두렵고 고독했던 망설임의 순간에 나를 지지해 준 결정적인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그때 읽었던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였다.


이후 갖가지 알바를 뛰며 물 한 잔 우유 한 잔으로 점심을 때우고, 콩나물 시루 같았던 서대문 입시학원에서, 사직동 도서관에서 혼자 분투했던 시간들. 때로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흔들려 불안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그 순간마다 데미안은 조용히 다가와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라며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곤했다. 드디어 지원했던 외대 독일어과에 합격했고,  입학 첫 날 학과장님의 첫 마디는 그간의 고투를 전부 보상 받은것 같은 감격과 터질 듯한 환희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신의 왕국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고를 떠난 지 30년이 지난 어느 해 가을, 무악재에서 관악구로 옮긴 '홈 커밍 데이'에 처음 참석했을 때 우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키다리 아저씨 같았던 훈남의 교장선생님이 그때까지도 현직에 계시며 환영인사를 하셨고, 강단의 구석진 커튼 옆에는 구부러진 허리로 카메라를 메고 우리에게 렌즈를 맞추시는 분이 계셨다.  그 옛날 교정을 돌며 우리들의 앳된 모습을 담아주시던 바로 그 사진사 아저씨였다. 그분을 다시 보았을 때의 감격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분이 김기창 화백의 동생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고 깜짝 놀랐고, 평생 외길을 걷는 예인과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민들레 씨앗은 어디에서든 민들레꽃을 피워내듯, 흩어져 있어도 여전히 일상에서 고투하며 세상과 관습에 지지 않고 순수한 자신만의 꽃을 피워내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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