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산 자락, 조용한 마을에 서남쪽을 바라보는 작은 땅이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초대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벽돌을 쌓아 올린 집은 산등성이를 등지고 앉았고, 앞으로는 하천이 흐른다. 여름에는 물이 넘실거리고, 겨울이면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가 멋스럽다. 하천 너머로는 푸른 들판과 논이 펼쳐진다. 봄이면 물담은 논에서 햇살이 반짝이고, 가을이면 누런 벼가 노을빛 풍경이 된다.
네모 반듯한 2층 집은 단단한 인상을 주고, 회색 고벽돌은 오래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다. 건물 곳곳에는 파노라마처럼 길게 이어진 창이 있다. 마치 바깥 풍경을 끌어안은 액자처럼 보인다. 해질 무렵, 창을 통해 주황빛 햇살이 길게 스며들고 어스름이 깔리면 따뜻한 조명 아래 테이블 위로 그날의 식사와 대화가 조용히 놓인다. 우리가 일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그 해 모내기가 한창이던 5월, 논에는 푸른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바람은 자작나무 잎을 흔들며 가게 안으로 살랑 들어왔다. 연분홍 한복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으신 할머님은 마치 이 마을의 오래전 시간을 그대로 품고 오신 듯했다.
“이런 곳은 난생처음이여” 웃으시던 얼굴로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 어떻게 시골에서 이렇게 근사한 식당을 할 생각을 했대?” 하며 손을 꼭 잡아주시던 온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집을 짓는 내내, 건너편 파란 지붕의 농부님께서 우리를 챙겨주셨다. 집을 다 짓고 떡을 해 감사 인사를 드리며 식사에 초대했다. 하늘도 파랗고 예뻤던 그 날, 짐칸이 넓은 트럭을 타고 동네 한 바퀴 꽃구경을 하신 뒤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그날의 테이블은 ‘초대하는 삶’의 첫 장면으로 기억되었다. 바쁘고 정신없고 힘든 날에도, 그날의 초대를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초대와 만남의 시간을 쌓으며, 꿈꾸던 삶에 닿아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도시의 속도를 기억한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하던 습관.
방금 막 떠난 엘리베이터를 보며 계단으로 올라갈지 기다릴지 고민하던 마음.
빠듯한 점심시간을 아껴 무언가를 하고, 퇴근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회의 속에서 시계를 보던 날들.
도시의 시간은 늘 빠르고, 목표가 분명하다. 그 안에서 나는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늘 쫓기듯 살아왔다.
이곳의 시간은 다르다. 매일 같은 하루가 느리게 흘러 가는듯 하지만, 작은 변화들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창밖 들판의 색이 조금씩 바뀌고, 자작나무 잎이 하나둘 노랗게 물들며,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식물들을 알아볼 수 있다.
그렇게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초대장 같은 테이블을 차려낸다.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을 담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초대하고, 초대받으며 살아가는 삶.
그렇게 이 시골 마을의 하루는 고요하고 단정하게, 반가움과 고마움으로 채워진다. 도시에서는 손에 쥐고 있어야 안심이 되었던 것들을, 이곳에서는 놓아도 괜찮다. 대신 그 빈손으로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마음을 나눈다. 그렇게 천천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