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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임신 기록 <1> 임신 8주의 마음가짐

들쭉날쭉한 마음이라도 시간은 쭉쭉 간다

by 셀레스티얼 m



어쩌다 보니 40대에 들어선 막내 낳기를 위한 여정.

다른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고 2년 전 넷째 출산 즈음 운동도 열심히 하기 시작해서 근육이나 에너지는 전보다 높아졌다고 느끼지만, 마음 한편에선 노산이 걱정스럽다.


특히 7-9주에는 착상혈이라고 해서 갈색 혈이 비치는 게 정상이라는데 7주에 처음 피가 비치고 수시로 보인다. 그런 날마다 마음이 들쑥날쑥이다. 유산인가? 하면서 오늘은 괜찮았다가 다음날은 우울해지고 그런 식. 유산의 경험이 있으면 더욱 그런 불안감이 쉽게 다가온다.


임신 주수 계산 앱을 다운로드한 게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3주가 지났다. 앱이 8주의 아기는 이런 사이즈입니다 하고 렌틸 콩이나 블루베리 따위의 사진을 보여준다. 남편은 당연하고 나 역시 실감이 나지 않는다. 8주 때 임신이 중지되었던 기억에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는 복잡한 감정이다. 하지만 점점 막내가 아기였던 때의 사진을 다시 보며 기대가 마음속 어딘가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다섯 아이가 있는 삶을 그려보게 되는 것이다.


26개월 동안 사랑을 듬뿍 받는 막둥이였던 딸아이는 이제 애교를 끝없이 부리고 큰 오빠들처럼 머리 굴리는 게 보이는 장난도 친다. 7개월쯤 지나 더 어린 아기가 집에 오게 되면 자기가 받던 사랑을 똑같은 시간만큼은 더 받지 못할 텐데 하며, 애틋해하는 엄마 맘은 모른 채. 아빠에게 안겼다 엄마에게 안겼다 하며 재롱을 부린다.


임신을 준비하는 마음은 이랬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가 너무 소중하지만, 그만큼 소중해서 만약 우리가 없게 될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자매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망이 너무 컸다. 낳아 기르고 보니 일단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가장 기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성격이나 취향은 여자아이 남자아이 스테레오타입으로 가를수 없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예로 화장실이나 수영장이라도 간다 치면, 딸은 8살만 넘으면 오빠들과 같이 함께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다. 서로 비교만 하지 않는다면, 같은 성별의 피붙이는 인생의 어느 순간 버팀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커서, 좋은 인생의 짝을 만나 아이를 갖게 될 때 서로를 잘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 아이가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이기에, 또 한 명을 낳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보다 더 이 아이처럼 이렇게 예쁘고 소중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



엄마라면 누구든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주변의 커리어 우먼들을 보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뭔가, 나는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고 있는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도 종종 있다.


낮에 어쩌다 창조적인 삶이 필요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충족시키고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한 글을 읽었다. 직업과 취미를 통해 그런 것을 배워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다가, 나는 출산과 육아를 통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다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쩌다 보니 내가 잘한다고 여기게 된 출산과 육아.

학생 때는 체력장 꼴찌였던 내가 무통 주사 한번 맞지 않고 아들 셋 딸 하나 총 네 명을 낳았으니 그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다섯째까지 생각하게 될 줄이야. 이 시기가 지나면 더 낳고 싶어도 그러기 힘들어질 테니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사용하고 있다고. 이따가 기저귀 갈고 쏟아진 우유를 닦으며 또 까먹을 자부심 한 조각을 붙들어 본다.


이 아이가 태어나면,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내가 하고 싶은 자아실현을 조금씩 늘리면서, 할 수 있다면 조금씩 일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가 되어야지. 그런 아주 먼 훗날의 원대한 계획과, 때로는 이 임신이 지속되는 건가 걱정하면서 보내는 임신 8주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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