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다음 글을 올릴 때까지 과거의 이야기만으로 작가의 이미지가 굳혀지게 될까 조금 걱정이 되어, 현재의 저는 어떤 사람인지 일상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글은 제가 쓰는 글들이 현재의 시간대를 따라잡게 되면 지우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현재 미국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비롯한 네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같은 T성향의, 서로 팩폭 하는(?), 그러나 존중을 잃지 않는, 제 눈에는 멋진 연하의 남편과 더없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보내고 있고요.
남편은 현재의 저를 말하자면 떼려면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천방지축아이들을 키우며 끈끈한 한 팀이 되었죠. 대학에서 만난 미국인/일본인 혼혈로, 8남매 중 넷째입니다. 같은 종교를 가졌기 때문에 이 삶이 끝나고도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교회 관련 봉사를 하는 신앙심 깊은 남자이며, 일본에서 선교사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만났으니 눈이 높다고 볼 수 있는.. 흠흠. 농담입니다. 여하간 남편은 졸업 후 IT 관련 직종에서 일해서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잠깐 아이를 맡기고 다른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거나 급한 일을 보거나 할 때도 있습니다. 친정은 한국이라 멀어도 네 아이를 큰 어려움 없이 키우고 있는 것은 남편의 도움이 큽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저에게 포옹하고,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스케이트와 씽씽이 (영어로는 왠지 스쿠터)를 타고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학교에 갔어요. 조금 있다 유치원전단계 학교 (프리스쿨이라 합니다)에 갈 4살짜리는 아직 어린 막내랑 놀고 있고요. 이제 곧 아기 아침을 먹여야 합니다. 4살 아이가 프리스쿨에 가지 않는 날은 집 근처에 무료 피트니스 클래스를 갑니다. 내일은 오늘보다는 바쁠 것 같아요.
저는 결혼하고 후 졸업과 동시에 첫 아이를 임신해 급히 가정주부가 되었어요. 첫 아이가 기어 다닐 때쯤 조금 우울해져 저를 위해 일을 구하다가 부업으로 번역 일을 시작해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고부터 한국엔 자주 가진 못합니다. 부모님은 종종 화상채팅으로 연락하고 이 년에 한 번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엄마가 오셔서 아이를 만나게 되셨죠.
저는 시간이 나면 아주 가끔 곡을 만드는데 제 게으름이 아주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 업데이트는 잘 안 됩니다. 요즘은 몇 년간 레슨을 받은 첼로와 피아노, 이제 막 시작한 더블 베이스를 더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