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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 사람 Apr 10. 2024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오래전, KBS 강연 프로그램에서 장유정 그녀를 처음 보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토리텔러라는 소개가 무색하게 그녀의 강연에서 별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쓰고 만들었다는 뮤지컬 '그날들'은 괜히 호감이 갔다.

 고 김광석의 노래로 가득 채운 공연이라니, 내용이나 연출에 상관없이 보고 싶었다. 두 시간 내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시 막내는 아직 어렸고 서울은 너무 멀었다. 내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 후 5년쯤 지나서, 우연히 누군가의 공연 후기를 읽게 되었다. 최고였다면서 강추하길래 나는 체면 불고하고 물었다.



그런데... 티켓 가격이 얼마 정도 할까요?


 회사에서 간 거라 잘 모르겠지만 10만 원은 넘었던 것 같다는 답글에 마음을 접었다. '어휴, 아무리 좋다지만 공연 한 번에 10만 원이라니...'


 또다시 5년이 지나, 이번에도 우연히 '그날들' 10주년 공연소식을 듣게 되었다. 벌써 10년이 지났다는 것도 낯설었고, 이제 10만 원쯤은 낼 수 있는 형편과, 예술의 전당까지의 거리가 부담스럽지 않은 지역에 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마침 50프로 할인까지 된다기에 아이들 몫까지 4장을 끊었다. 할인 혜택 대신 좌석 선택권은 없었지만, 나는 노래를 듣는 게 주목적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되었다. 2층에서도 맨 뒷줄은 배우들 얼굴이나 목소리를 제공하는데 인색했고, 그저 무대배경만 잘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크린과 구조물이 잘 조화된 배경은 충분히 훌륭했고 노래도 만족스러웠다. 배우들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어느새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그 시절의 풋풋하고 애절했던 사랑의 기억에 빠졌지만, 그뿐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제 추억 깊숙이 묻혀버린 탓인지 주연배우들의  절절한 사랑표현을 보면서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엔딩에 이르러, 무영이 동료 정학에게 쓴 편지를 읽는 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 글을 썼을지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종으로 인해  큰 고난을 겪게 될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 느껴졌다. 이제 나는 사랑보다 우정이 더 끌리는 나이가 된 걸까?

 극에 몰입하느라 옆자리의 남편이나 애들에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남편이 어디쯤에서 울었을지는 짐작이 되었다.




 몇 해 전, 달리는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너도 좀 소시오패스 끼가 있지 않니? 그렇잖아!"

 남편이 운전 중이 아니었다면 뒤통수라도 한대 갈겨주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안 울잖아. 생각해 봐, 네가 운 적 있어? 쏘시들이 사람 감정에 공감을 못하지 않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안전운행을 위해 입을 닫고, 귀가 후에 몇 마디를 건넸다.

 "그럼 우리 형편이 힘들 때마다 내가 울었으면 당신이 더 편했겠어?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지 말라고 참아줬더니 그게 불만이었어? 지금이라도 맨날 울어줄까?"

 남편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그러고 보니 당신 말이 맞다 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상해 있었다. 나의 배려를 알아주기는커녕 쏘시오라고 폄하까지 하다니...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더 이상 참지 못한 내가 터졌다. 그동안 쌓였던 남편의 무심함과 그에 대한 서운함들이 폭죽처럼 요란하게 동시다발로 불꽃을 틔웠다. 아이들 셋 앞에서 누구도 상상 못 할 일이 벌어진 거였다. 그때 남편의 참담한 표정이라니...

 그날 일은 아이들도 남편도 나도, 여태껏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내가 다시 운 적은 없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각자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20대 초중반인 아이들도 몇몇 노래는 알고 있었다며 반가워했다.

 

 자려고 누웠을 때 내가 물었다.

 "무영의 편지를 읽어줄 때 나도 모르게 울었어. 당신은?"

 "싫어, 말 안 할래. 너무 아파서 말 못 해."

 그러나 얼마 못 버티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그 노래가 나오는데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눈물이 쏟아지더라. 당신 얘기 같았거든. 근데 살짝 고쳐야 할 부분은 있었어. '아무리 괴로워도 엄청 짜증 내던(원곡은 웃던) 그녀가...' 사실적인 표현이지."

 남편의 눈물 포인트는 내 예상과 정확히 맞았지만, 내가 나한테 걸맞도록 고치고 싶던 단어는 '아무리 괴로워도 (웃던 → 안 울던)' 정도였다. 엄청 짜증이라니!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난 너무 깜짝 놀랐네. 그녀의 고운 얼굴 가득히 눈물로 얼룩이 졌네. 아무리 괴로워도 웃던 그녀가 처음으로 눈물 흘리던 날, 온 세상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


 남편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가사는 이 부분이었으리라. 그러나 내 뇌리에 박힌 부분은 이거였다.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네.


 남편에게 위의 후렴구를 들려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나도 울었으니까, 언제 당신 곁을 떠날지 몰라.

있을 때 잘해!"

  

 이렇게 어느 여름날 저녁의 뮤지컬 '그날들'은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한동안은 서로의 마음속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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