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by zena

등교 시간이 지났을 텐데 아이는 급하지도 않은지 느릿느릿 터덜터덜 걸어간다. 둘러멘 가방이 꽤 무거워 보인다. 아직까진 종이책들이 살아남았구나 안심이 되면서 어쩌면 가방 안엔 사람들이 모르는 아이의 생존품들이 가득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나 아이는 학교 안으로 걸어간다. 한 톨의 즐거움도 없이. 아이의 등 뒤를 바라보며 나를 겹쳐본다. 어떤 순간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웃고 있었던 순간들의 기억도 여기에 서서 보니 어쩐지 죄다 아프게만 느껴진다. 무엇보다 일곱 시간 넘게 네모난 공간에 갇혀 끊임없이 가르침 받아야 하고 시시때때로 내어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일과는 생각보다 숨 막히고 끔찍했다. 매번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내어준 숙제를 해낼 수 없었다. 해낼 수 없는 일이 쌓이면 인생은 그만큼 답답해진다. 10대의 반항과 방황은 이런저런 답답함이 쌓인 당연한 일탈일지도.


그때의 답답함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걸까. 누구도 내게 숙제를 내지 않는데 여전히 나는 무언가를 풀고 있다. 답이 있을 것만 같고 그래서 그걸 완벽히 풀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답 같은 건 특히나 정답 같은 건 없다. 아무도 내게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쳐주지 않는다. 가만히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조용히 떠올려본다. 출제자를 추적한다. 추적의 끝엔 나밖에 없다. 어쩐지 숙제가 이상하고 요상하고 딱히 의미도 없는 유형들도 가득 차 있더니만. 이제야, 마흔이 되어서야 출제자를 알아차린 척했지만 숙제는 계속될 것이다. 숙제는 멈추지 않는다. 모른 척 숙제를 내고 아는 척 풀려고 용을 쓸 것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답답해진다.


걷는 길을 비틀어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걸어간다. 이건 일탈이다. 어른도 숙제를 해내지 못하면 벗어난다. 눈으로 먼저 길을 만들고 걸음으로 틈을 만든다. 뚜벅뚜벅 걸어 돌아오겠지만 비틀비틀 걸어간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끝없이 달리고 싶다. (어쩌면 아이는 더 답답해질지도 모른다) 아이는 사라지고 없고 나는 돌아 돌아 제자리로 간다. 오늘의 첫 번째 숙제를 끝낸다.



ㆍ이미지 출처 ㅡhttps://m.blog.naver.com/paravims/22397210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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