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멀리서 다가오는 저 사람은 아는 사람이다. 물론 내가 아는 건 얼굴의 익숙함일 뿐 이름과 나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으므로 인사를 하고 싶다. 속으로 후우후우. 몇 번의 호흡을 한다. 어떤 타이밍에 고개를 들면 자연스레 인사만 할 수 있을까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느라 떼를 놓치고 상대는 나를 빠르게 지나쳐 간다. 나는 웃을 듯 말 듯 울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참 못난이다 하겠지.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행동 교정 시간. 부모는 왜 철저히 인사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가르쳤겠지 당연히) 떠올려보면 인사를 해야 하는 순간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엄마 뒤로 늘 숨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뭐가 부끄러웠을까. 잘 모르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이? 그 정도의 건방짐도 물론 있었겠지만 스스로를 소개하는 일이 낯설고 어려웠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누구누구입니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잘 먹습니다.’
‘안녕’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로 친절 혹은 존중, 어쩌면 세상의 거의 모든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이젠 아는데도 어렵다. 상대가 누구세요? 할 것만 같고 어떤 날처럼 모르는 척 지나쳐버릴 것만 같고 삶이 안녕하지 못해 인사조차 버거울 거 같고. 아니라면 속으로는 나보다 더 벅차게 안녕을 외치지만 나처럼 바보같이 구느라 떼를 놓치는 건지도 모른다. 어떤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조차 그 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모르는 사람이 되는 날들도 종종 생겨나는데 알고 나면 따분한 이유겠지만 많이 섭섭하고 내 쪽에서라면 많이 미안해진다. 혹 인사 뒤에 밀려올 지루한 대화가 난감하다면 우리 그냥 간결하게 인사만 하고 지나가면 안 될까. 말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복잡함이다.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제발 내 입이 발보다 느리기를.
이런저런 말들로 떠들어대도 사실 한 가지다. 당신이 안녕하면 좋겠다. 내가 안녕하면 좋겠다. 그걸로 충분하다. 한겨울 차가운 바람 속에 안녕,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면 세찬 바람에 안녕이 실려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갈 것만 같다. SNS 말고 사진 말고 생생한 당신의 일상에, 좋기만 한 건 아닌 날들 속에 따뜻하게 스며들면 좋겠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몇 있다. 하지 못한 인사를 해볼까. ‘안녕하세요, 누구누구입니다, 저는 대체로 잘 지냅니다. 부디 당신이 그럭저럭 잘 지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