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과 발끝에 허옇게 눈꽃이 핀다. 기다린 것처럼 엄지손가락 끝이 갈라지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퉁퉁 부은 손끝과 발끝이 간질거리며 아려온다. 어김없이 겨울이 온 것이다. 백단향이 나는 것과 베르가못 향이 나는 것 여기저기서 받아온 이런저런 향까지 나는 핸드크림 샘플까지 허연 눈이 녹아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듬뿍 발라 보지만 봄이 오기 전까진 단단히 쌓일 뿐이다. 나이가 들면 단정해져야지 하는 그 나이가 되었으나 단정과는 어쩐지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
겨울에 해야 할 일이라면 새벽 달리기만 한 게 없다. 동이 트기 전에 (너무 어두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두껍지 않을 정도로 옷을 갈아입고 트랙보다는 큰 도로가를 중심으로 골목을 지그재그로 누비며 달린다. 너무 추워서 달릴 수밖에 없고 아직 잠들어 있는 회색빛 세상을 홀로 유영하듯 휘젓다 보면 조용한 감사가 새하얀 입김처럼 밀려온다. 어제와 그제 그리고 못나고 모진 날들은 찬바람에 실려 보내고 오늘의 나만 뚜렷해지게 앞으로 앞으로. 끝까지 뛸 수 있고 언제라도 할 수 있는 내가 된다. 망각과 감각을 선물로 주는 이 새벽이 감사할 수밖에 없다.
팥도 빵도 좋아하지 않지만 붕어빵은 좋아하는 엄마에게 올겨울 붕어빵 한 마리 사다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매 겨울 사다 준 건 아니다. 사실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엄마에게 건강 챙기라는 말은 너무 아픈 말이 아닐까 하면서도 여지없이 건강 챙기라는 말만 입안에 가득 찬다. 이럴 때 붕어빵 한 마리라도 갖다 바치면서 해야 할 텐데... 문득 엄마와 나의 겨울은 얼마나 남았을까 몰래 생각하다 보면 한낮에도 손끝과 발끝이 찌릿찌릿 저려온다. 엄마에게 했던 유일한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남일처럼 관망하며 어서 목련이 피길 겨울에 서서 봄 생각을 하는 척 마음을 진정시킨다. 손끝과 발끝 달리기와 엄마. 나의 겨울에 가득 찬 애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