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책상 위에 네잎클로버로 만들어진 책갈피가 놓여 있다. 거기엔 문구도 함께 새겨져 있었다. 그 문구를 읽으면 책갈피를 만든 사람의 행운이 내게도 조금 스며드는 건 아닐까 재미없는 상상을 하면서 읽었다. <취미가 네잎클로버를 뜯는 거라 드립니다. 행운이 가득하시길!> 나는 처음 글을 깨우친 사람처럼 여러 번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지난 어떤 날들이 떠올랐다. 맑고 밝은 그녀는 네잎클로버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가 네잎클로버를 어떤 방식으로 좋아하는지 묻진 않았지만 네잎클로버라는 단어만은 내 머릿속에 진하게 남았다. 그 뒤로 나는 길을 걸을 때면 풀더미들을 유심히 살폈다. 생각보다 가로수 밑엔 세잎 클로버가 많았다. 이 속에 분명 네잎클로버 하나쯤 있을 것 같았다. 늘 다니던 길이므로 오늘 못 찼으면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찾고 찾았으나 정말 담고 있는 의미처럼 행운은 쉽게 나타나 주지 않았다.
그녀가 여전히 네잎클로버를 좋아했으므로 네잎클로버 찾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 혹시 찾지 못한 네잎클로버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며 풀더미를 훑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잎클로버의 생을 꺾어 건네는 행운이 과연 행운일까. 과도한 해석이란 생각과 그럼에도 나의 마음 때문에 생명을 꺾는 일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무엇보다 옳고 그름에 앞서 네잎클로버를 찾아 주고자 했던 내 마음이 그녀의 삶을 이해하고 알아주고 그리하여 우정으로 더 나아가는 행동은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건 단지 과시욕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도 사람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있다는 증명. 그날 이후로 네잎클로버 찾기는 끝이 났고 그녀에게 행운을 주겠다는 어리석은 생각 또한 버렸다. 그녀는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만 마음에 남겼다.
<취미가 네잎클로버를 뜯는 거라 드립니다. 행운이 가득하시길!> 몇 번을 읽어도 목에 걸리는 문장이다. 찾는 게 아니라 뜯는 거라는 표현이 자꾸만 지난날 내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이걸 쓴 이가 누군지 안다면 찾아가 ‘네잎클로버의 행운도 좀 챙겨 주세요’ 볼멘소리를 뱉고 싶기도 하고 그 마음 또한 나 자신을 위한 만족일 뿐 헤아리는 마음이 아닌 걸 알기에 책갈피를 슬며시 제자리에 둔다. 가로수 밑엔 여전히 토끼풀이 무성하다. 몸을 숙여 자세히 보진 않고 무심한 척 스치며 어디가 엔 잘 자리한 네잎클로버의 행복을 떠올린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행운처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