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자신의 죽음보다 지구의 멸망을 가깝게 느끼는 나란 사람. Y2K 세대이자 밀레니엄 세대이자 MZ 세대이기도 한 나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하는 컴퓨터의 오류 문제가 정말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믿었고 사회 시스템 문제로 인한 저출산과 개인화를 넘어선 슈퍼 개인의 시대에 출산도 하지 않고 슈퍼 개인으로 살면서 이젠 정말 지구의 멸망이 코앞이다 싶었다. 주로 연인에게 ‘만약에 게임’이라는 이름을 붙여 만약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굳이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듯 물었는데 여러 번 물었음에도 상대의 대답도 나의 대답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신 죽음을 앞두고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절박하고 허무한 일이라 그 순간 정말 그것을, 그것만 할 수 있을까? 란 질문 아닌 질문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한가하게 나무나 심고 있겠다는 말이 아니라 스피노자는 자신의 정체성, 존재가치의 규정을 드러낸 것이라는 글 혹은 콘텐츠를 읽거나 본 적이 있다. 말인즉슨 지구의 멸망 앞에서도 나무를 심을 정도로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스스로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 존재로 인식한다는 말이었다. 질문이 다르게 들리자 자연히 내게도 연인에게도 다르게 질문하게 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너는 어떤 사람으로 살겠냐고, 너는 어떤 사람이냐고. 연인이 답을 한다. 자신의 눈빛처럼 웃음처럼 걷는 모습처럼 답한다.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다. 연인이 나에게 묻는다. 우물쭈물하면서도 답을 하긴 했는데 아닌 것 같다. 아직은 내 말이 아닌 거 같고 어쩌면 영원히 내 말이 아닌 말들만 가득 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한 문장의 자리를 비워 두고 한 마디 뱉을 숨도 남겨둔다. 쓰고 뱉기 전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