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 - 롯폰기에서

by zena

숙소에 짐을 부리고 센소지를 들렀다 오후 늦게 지하철을 타고 롯폰기로 넘어왔다. 새로 사서 입고 온 바지가 맞지 않았는지 걸을 때마다 허벅지 안쪽이 쓸려 따가웠다. 챙겨 온 바지도 따로 없고 점점 아파져 걷는 게 힘들었다. 급하게 무인양품과 유니클로를 검색해 찾아갔다. 속바지를 살까 바지를 살까 하다 예산에 없었던 지출이라 좀 더 저렴한 속바지를 샀다. 다행히 조금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그제야 롯폰기가 눈에 들어왔다. 부산으로 치면 서면이나 연산동과 느낌이 비슷했다. 상업 시설과 회사 건물들이 섞여 있고 사이사이로 음식점들과 술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우리는 조금 걷다 롯폰기 일루미네이션이라 불리는 야경이 펼쳐진다는 곳으로 향했다. 여행 첫날이라는 설렘이 섞인 피곤함이 조금 몰려왔다. 도착해서 먹은 거라곤 빵 한 개와 아메리카노가 전부였다. 어서 야경을 보고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진을 많이 찍어주고 싶어 했고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나는 사진을 찍는 게 싫었고 가끔씩은 손을 놓고 싶었다. 그의 이유는 나를 위해서였고 나의 이유는 나를 위해서였기에 손만은 꼭 잡고 다녔다.


조금 헤맸다. 근처라면 목적지가 같은 몇몇 무리가 보일 텐데 주변은 퇴근하는 사람들의 빠른 걸음들뿐이었다. 시간은 저녁 6시로 향해 가고 있었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구글 맵에 의지해 지하도를 건너 쇼핑센터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뺑뺑 돌듯이 걷다가 밖으로 나오니 반짝이다 못해 번쩍이는 가로수들이 길쭉한 도로를 따라 펼쳐져 있었고 거짓말같이 사람들이 무리 지어있었다. 여기가 롯폰기 일루미네이션, 즉 롯폰기의 야경이었다. 내 눈엔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시내의 겨울 풍경이었다. 한눈에 보일 정도로 거리도 짧았고 야경과 어울릴만한 인상적인 건물이나 마켓은 보이지 않았다. 루이뷔통 디올 같은 명품 상점만 가로수의 불빛만큼 빛을 쏘며 줄지어 있었다. 나는 여기가 맞나 싶었고 그도 실망한 눈치였다. 나의 실망은 가로수 길 자체가 아니었다. 관광지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 빛이 너무 강해서인지 전선을 감아놓은 가로수들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 나무 아래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춤을 추고 노래하고 말을 하고 있었다.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가로수 사이로 나 있는 횡단보도엔 파란불이 들어올 때마다 사람들이 멈춰 서 사진을 찍었고 불이 바뀌어도 건너가지 않아 교통경찰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야말로 혼돈과 무질서 그 자체였다. 우리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거리는 고요했고 다행히 적절한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손을 잡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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