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와세다 대학교로 향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고 학생들이 여러 방향으로 무리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캠퍼스가 여러 군데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우선 근처 카페로 가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나도 샌드위치를 시켰다. 극단 활동을 하느라 (어쩌면 성격 탓에) 대학 생활을 거의 혼자 하다시피 했기에 식사도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쯤 프랜차이즈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나는 어렵지 않게 그리고 쓸쓸하지 않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생각이나 그때처럼 아침을 해결했다. 학교 앞이라서인지 직원분들이 어려 보이고 더 친절하게 느껴졌다. 가방을 둘러멘 학생들이 지나가고 정장 차림의 사람들도 지나갔다. 배달을 하는 기사님들이 차를 세워두거나 물건을 내려놓기도 했다. 한국과 다르지 않은 일상이 여기에도 펼쳐지고 있었고 거기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나와 그가 조금은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하루키 문학관이 있는 캠퍼스로 향했다. 정문 앞 작은 건널목에도 서서 수신호를 해주는 분들이 있었다. 어린아이를 챙겨 주는 부모 같아 보여 웃음이 났다. 학교 안은 학생들이 제법 지나다니는데도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우리의 말소리가 크게 들릴까 봐 일부러 말은 줄이고 주변을 즐겼다. 문학관에 조금 일찍 도착해 들어가려면 1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마침 맞은편 건물에 학생들이 앉아 노트북을 하거나 뭔가를 먹고 있는 휴게실이 보여 그곳으로 갔다. 그는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나는 공간을 둘러봤다. 다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애잔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그때의 내가 보고 싶었다. 만날 수 있다면 한없이 손을 잡아 주고 싶다. 문학관 문이 열렸다. 벌써 안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학관이라기보다 작은 도서관 혹은 휴게실에 가까운 느낌이었고 실제로 한 두 명의 학생들이 테이블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만 전부 하루키의 책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여기가 어디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출판된 하루키의 책들이 시대별로 나누어져 있어 새로웠고 표지만 봐도 알 수 있는 한국어판이 눈에 띄었다. 위층엔 평소 하루키가 즐겨 듣거나 소설 속에 등장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LP 판들도 장식되어 있었다. 곁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긴 소파가 있어 한숨 돌릴 겸 앉아 음악을 들었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어느새 나는 울고 있었다. 그가 놀라 나를 쳐다봤다. 어쩐지 멈추고 싶은 마음보다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하루키의 소설 <1Q84>에 수록된 문장이자 Harold arlen의 <It's Only A Paper Moon> 가사의 일부분이다. 그때의 눈물은 이 문장을 떠오르게 했다. 매번 낯설고 어려운 스스로가 그 순간만큼은 진짜가 된 것 같았다랄까. 나라는 사람이 온전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 알겠다는 듯 아무래도 다 괜찮다는 듯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더 듣고 있다간 음악에 잠겨 버릴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굳이 기념사진을 찍자는 그에게 툴툴대며 사진을 찍었고 다음 목적지가 어딘지 알지 못한 채 손을 잡고 걷고 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