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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Sep 18. 2020

그럴 줄은 몰랐다(3)

그럴 줄은 몰랐다.     


 남이 말하면 듣지 않는 종족들이 있다. 그게 바로 나이며 그 오빠다. 볼 때마다 입에 단내 나도록 더 많은 것을 꿈꿔 보라고 말했지만 얄미울 만큼 일관된 오빠의 대답은 잔잔한 파도처럼 아무 일 없이 살겠다- 였다. 물론 그런 삶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 말을 하고 있는 오빠는 왠지 모르게 죽은 생선의 눈깔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찜찜했다. (오빠 미안) 자신이 자기를 모를 때가 많고 남이 옆에서 부추기면 못 이기는 척 행동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머뭇거리다가 후회하는 나를 위한 말이기도 했지만 오빠가 삶을 패대기치며 나아가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주야장천 조금이라도 재미있으면 한 번 해보고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면 등록과 결제부터 하라고 바람을 넣고 또 넣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이제야 마치 생전 처음으로 큰 깨달음을 얻고 세상에 그 깨달음 전파하고자 내려오신 부처의 모습으로 도전을 말하는 오빠의 인자한 모습이라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부의 추월차선>을 읽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기억나는 거라곤 저자가 람보르기니를 샀다는 것뿐인 나와 달리 아주 세세하고 진지하게 읽고 있는 듯했던 오빠. 여기저기 새로운 식당이나 카페에도 가보고 전에 내가 했던 가게의 월세 동향을 물어보기도 했다. 오랜만에 그의 푸르뎅뎅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나조차 온몸에 에너지가 도는 것 같아 솟구치는 빡침이 그나마 수그러들었다. 참 다행이다. 역시 사람은 변한다. 그런데, 다 좋은데, 오빠 네가 그럴 줄은 몰랐다. 우리답지 않게 만남이 아름답게 마무리되려는 순간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하는 거 좋은데, 그래도 민폐는 끼치지 말고 살자.     


 결심같이 말했지만 분명, 나에게 하는 충고란 걸 알았다. 내가 글 쓰고 영상 찍고 영어공부도 한다는 걸 그냥 공부한다- 라고 뭉뚱그려 말해서? 그래도 집에 손 안 벌리고 여태껏 버티고 있다고 말하지 않아서? 그것도 아니라면 전과 달리 자꾸만 넙죽넙죽 잘도 얻어먹는 내 태도가 쭈구리 같이 보였을까? 자격지심이 발동했다. 그래도 굳이 저렇게까지 말해야 했을까. 상처는 스스로 만든다는 말을 믿지만, 나를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도 알지만, 어쩌면 스스로 매일 민폐는 끼치지 말자고 다짐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 말은 심했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지만, 오빠 네가 나한테 그럴 줄도 몰랐다. 그래 뭐- 다음에 고기 사주면 용서하겠지만, 내가 요즘 부쩍 말이 없어졌다는 걸, 웃음이 더 사라졌다는 걸, 오빠 너는 알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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