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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Sep 20. 2020

엄마의 온도(1)

 서른다섯 살 먹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엄마이다. 올해로 예순여섯이 되신 나의 엄마는 전라도 광양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태생이 경상도 사람인 것처럼 화가 많다. (지역감정 조장 아닙니다. 경험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도 기분이 나쁠 때도 항상 톤이 높고 화가 나면 일단 소리 한번 화끈하게 지르시고 말을 안 한다. 이런 엄마의 성향을 파악하기까지 무려 35년의 고된 풍파를 겪…은 것은 아니고, 나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엄마를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엄마는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남의 집 살림을 살아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꿈처럼 남편의 사랑을 기대했지만, 반반한 인물만 보고 결혼해서인지 엄마의 희망은 보란 듯이 빗나갔고 생계와 살림을 도맡아 하며 전투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나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팠던 나까지 돌보느라 희생이 습관이 되었고 자식 건사가 팔자가 되었다. 모든 엄마에게 자식은 당연히 애틋하겠지만 특히나 엄마는 남편에게 줄 사랑까지 딸들에게 쏟으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집에 밥을 먹으러 가면 세 자매 모두에게 생선 가시를 발라 준다는 건 말 다한 거다. 엄마에게 우리들은 부모이자 남편이며 친구이자 삶의 끈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면서 엄마는 부쩍 한숨을 자주 내쉰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혼자라는 외로움, 자발적이었지만 보상 없는 희생에 대한 허무함,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버린 거울 앞에 자신을 보며 아마도 많은 슬픔이 밀려왔을 것이다. 하여, 그나마 막내인 내가 자주 전화를 한다. 딱히 할 말은 없다. 밥 먹었어? 라는 상투적인 밥타령 뿐이다. 그렇다고 엄마도 말이 많은 건 아니라서 통화는 1분 내로 끝나버린다. 그러나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연락을 뜸하게 하면 어김없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요즘 많이 바쁘네 우리 딸 (결코 문자 그대로 해석해선 안된다)


 전화를 하면 그렇게 무미건조하고 퉁명스럽게 받으면서 전화를 하지 않으면 또 안 한다고 삐친다. 엄마를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기껏 전화했는데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 목소리에 나도 내심 섭섭하다. 어느 장단에 덩더쿵을 맞춰야 할지 너무 어렵다. 오죽하면 세 자매 모두, 엄마에게 하는 말이 엄마는 아들이 없어서 다행이야, 우리 집에 며느리가 들어왔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겠어- 라며 말을 할 정도다. (엄마 또 미안)     

 별다를 것 없는 나날들이었다. 엄마의 온도는 여전히 바닥에서 치고 올라올 줄 모르고 요령 없는 나는 늘 밥 타령을 무한 반복하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화를 하면 묘하게 목소리의 톤이 그러니까 감정의 톤이 일정하게 변한 엄마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어느 날은 딸 많이 힘들지? 하는 이상한 애교 섞인 상냥한 말을 앞뒤 없이 하기도 했고 어느 나날들은 며칠 연락이 뜸해도 날카로운 문자나 타박이 없었다.     


이건 분명,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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