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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Nov 19. 2020

전화를 받지 않는 나에게

콜 포비아 (call phobia)전화통화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통화보다는 문자나 모바일 메신저, 이메일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을 말한다. 콜 포비아는 2009년경 처음 등장한 스마트폰에 의해 나타난 현상으로,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대화·배달 등이 해결되다 보니 메신저나 문자는 익숙해진 반면 전화 통화는 어색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 콜 포비아다.     


 인간관계의 폭이 좁은 내가 콜 포비아 인게 스스로 우습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콜 포비아라는 생소한 단어를 알게 된 건 몇 년 전이다. 전화를 잘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종종 생겨났고 그때마다 나는 진동으로 해서 몰랐다는, 사실이지만 뻔한 말을 했다. 그럼 벨소리로 하면 되잖아? 라는 말에 묵묵부답으로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싫은걸 어떡해- 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책방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것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찾는 책이 K의 책방에 있거나 배달, 택배가 필요하거나, 기타 여러 가지 논의가 필요할 때 등등 순간을 놓치면 안 될 때 빨리 통화를 해야 하는데 내가 자꾸만 k의 전화를 놓치는 거였다. 그가 주의를 줘도 절대 전화를 벨소리로 해놓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폭발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멍하니 TV를 보던 어느 날 현대인들에게 콜 포비아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고, 그 며칠 뒤엔 어떤 연예인이 벨소리 고포증이 있다는 고백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콜 포비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행동이 조금은 납득이 되었고, 그다음부턴 진동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 폰을 항상 가까이에 두는 버릇을 들였다. 전자파보다 벨소리가 더 무서운 나는 콜 포비아니까.      


 1년의 명랑과 방랑을 접고 다시 책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똑같은 문제가 또 문제가 되었다. K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면서 일을 할 때만이라도 벨소리로 해두라고 애원 아닌 애원을 했지만 나는 잔소리를 들을 때 잠시 벨소리로 바꿨다가 견디지 못하고 다시 진동 모드로 황급히 전환해버리고 만다. K에게 내가 콜 포비아라 전화 벨소리가 내겐 공포라며, 보기엔 당당한 듯 이유를 댔지만 나도 나에게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특히나 책방에 있는 유선전화는 아예 받을 엄두가 나지 않고 얼른 저 소리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비는 내 모습에 나조차도 놀란다. 이건 정말 병일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난 건지. 예전엔 내가 이런 불안증이 있구나 라고 인지했다면, 지금은 도대체 왜 그런 불안증이 내게 생겨난 건지 발병 원인(?)을 알고 싶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것은 일적으로 받고 싶지 않은 전화도 억지도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말을 하는 것이 소통으로 느껴지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로 느껴지는 피로감, 메시지나 SNS와 달리 즉각적인 반응과 대답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게 전화를 받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까. 단순한 회피 혹은 귀찮음은 아닐까 의심해본다.      


 한 번씩 전화를 꺼놓고 하루를 보내는 날이 있다. 처음 시도했을 때의 그 해방감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과 단절을 느끼기보다 세상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휴대폰을 만지는 대신 현실의 갖가지 것들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시공간이 만들어진다. 그 뒤로 몇 번인가 더 시도해보았지만 몇 번은 성공하고 몇 번은 실패했다. 혼자이고 싶지만 고립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 같다. 그래서 벨소리와 진동 모드 사이를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들여다본다. 아직은 어떤 이유도 제대로 인정할 수 없다. 오늘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휴대폰이 푸념을 한다. 아직 나는 전자파보다 벨소리가 무섭다. 하지만 오늘부터 침대맡에 꽂아둔 충전기를 빼고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 귀를 쫑긋 세우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고 푹 잠을 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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