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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Dec 02. 2020

라이프 그리고 라이프


습관처럼 연말엔 새해를 기다리며 계획을 세운다.    

 

 계획을 세우기 전엔 반드시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데 자아 성찰을 빙자한 자학과 괴로움, 그 어디쯤에 허덕이다 그래도 내년엔 뭐라도 하겠지- 하며 끝끝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막장 드라마 한 편 찍는다고 보면 된다. 경건한 마음으로 다이어리 제일 앞 장을 펼쳐본다. 이것저것 많은 말들을 써 놓았다.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얼른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아니다 내가 있다.     


 많은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신상에 변화가 크다 보니 잔잔한 결심과 행동에도 들뜨고 흔들거릴 나를 알기에 굳이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적는다고 적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과감하게 다이어리를 열어 눈을 고정한다. 간단하게(?) 여섯 가지다. 공평하게 세 가지는 목표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세 가지는 그래도 해냈다. 이루지 못한 세 가지는 내가 가장 원하는 순서대로 써놓았던 위쪽을 차지한 세 가지다. 생활과 꿈과 꿈에 닿아 있는 것들. 잠시 우울감에 젖는다. 그래도 아래 세 가지가 있다. 이것들도 생활과 꿈과 꿈에 연결되어있는 것들이다. 해낸 것들이니 잠시 또 우월감에 젖는다. 비교 대상은 지나간 나이지만 그렇기에 더 뿌듯하다.     


무엇을 써 내려가야 할까.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행동을 바꾸지 않고 삶이 바뀌길 바라는 건 정신병이라고- 마치 어디선가 나를 내려다보며 외치는 듯하여 선뜻 원대한 포부를 갈길 수가 없다. 2021년을 타자 치고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본다. 정말 다른 내일은 올까? 겪어보지 못한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30대엔 어른, 현실, 생계, 생존, 책임 이런 것들이 머리와 가슴에 쌓인다. 핑계가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무섭다. 점점 더 나는 내가 제일 무섭다.     


 나에게 조언하듯 써 내려간다. 대상이 내가 아니고 남이 되는 순간, 생각은 단순해지고 뱉어지는 말들도 한결 가벼워진다. 너무 가까이에 있는 자신과는 늘 타협이 어렵지만 타인에겐 적어도 따뜻한 말 한마디는 건넬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남이라고 생각하고 살자 싶다. 올해 이루지 못한 세 가지와 새로운 세 가지를 더해 여섯 가지를 만들어 본다. 내년엔 아니, 내일부터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면 2021년 연말엔…또 반성하고 있겠지만, 전혀 괜찮지 않지만,     


다음은 있다. 언제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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