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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Dec 10. 2020

작고 무섭고 지겹다

서른을 훌쩍 넘겨 조금 있으면 곧 마흔이 될 (양념 쳤습니다) 나는 아직도 세상이 무섭다.    

 

 아니 더 무서워진다.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것도 물건에 하자가 있어 정당한 반품 요청을 하는 것도 그저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와도 가슴이 쪼그라들어 자연스레 몸이 웅크려진다. 경험은 두려움을 희석해준다던데 되려 증폭을 체험하고 있는 요즘 코로나도, 가게 앞 공사 소음도, 많은 걸음 들이 사라진 조용한 거리도 무섭다. 어릴 때부터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나는 말본새도 적당하게 직설적이라 남한테 지고는 안 살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스스로도 그렇구나 착각했다.      


 역시나 착각은 자유다. 화목의 ‘화’ 자도 없었던 집안 분위기와 소심한 성격이 맞물려 <조기흥분증후군>을 얻었다. 부당한 상황이나 견디기 힘든 순간에 놓이면 앞뒤 따지지 않고 흥분해서 목소리만 커지고 정작 실속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는 증상으로 어떤 싸움이든 매번 지기만 하는 자신을 성찰한 후 찾아낸 병명이다. 상태가(?) 이렇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일단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이성적일 시간은 없고 두려움과 괴로움은 증폭되어 자꾸만 회피한다. 지나친 감정과 회피가 만나면 마무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반복적으로 자학만 하다 해결도 해소도 아닌 해로움만 쌓는다. 그렇게 다음번과 그 다음번에도 늘 남한테도 지고 나한테도 진다. AI와 코로나가 만나서 세상은 더없이 빠르게 변하는데 작은 나는 나만 보느라 꿋꿋이 변하지도 않고 늘 지고만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출퇴근길 분주함이 줄어든 거리에도 간간이 사람들이 보인다. 어디론가 향해가는 그 걸음들이 왠지 어른의 걸음인 것 같아 하염없이 바라본다. 누구나 언제라도 두렵고 어렵고 무섭다는 것을 나는 알지만 세상은 너무 크고, 나는 한없이 작게만 느껴져서 혹시 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진 않을지 혹여 아침이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이 돼버리진 않을지 심히 염려된다. 살다 보니 문제들은 내가 숨 쉬는 그 순간부터 생겨난다. 삶이 곧 문제풀이인 것처럼. 어릴 땐 오답도 멋이지만 지금은 나도 해답을 찾고 싶다. 아니다. 나는 사실 그저 무서워하는 것이다. 자꾸만 풀지 못하는 문제들만 눈앞에 놓일까 봐 그런 삶의 반복이 지겨울 뿐이다. 아니다. 나는 사실 내가 지겨운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말처럼 똑같은 말을 써 내려가는 내가.     


그저 작고 무섭고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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