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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Dec 18. 2020

엄마는 곰국보다 따뜻하다

뽀얗고 뜨뜻한 곰국이 먹고 싶었다.     


 어릴 때 겨울이면 엄마는 장어를 사거나 한우 뼈를 사다가 며칠을 고았다. 나는 워낙 먹성이 좋았으므로 맛은 있었지만 겨울내내 국은 곰국 아니면 장어국이었으므로 지겨움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잘 먹긴 엄청 잘 먹었다) 그래서인지 커서 딱히 곰국이 먹고 싶다거나 생각나진 않았다. 그 정도로 원없이 먹었다. 그리고 돼지국밥의 맛을 알게 된 후론 더더욱 싱거운 듯한 곰국은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습관처럼 한 해를 돌아보는 계절이지 않은가.     


 겨울의 밤은 축축함을 덧입어 어둠을 더 짙게 만든다. 퇴근길 어둠은 상실감에 지친 나를 더욱 침잠하게 만든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글픔에 눈물도 찔끔 났다. 그렇게 터덜터덜 걷다 보니 어느새 어린 시절까지 가 닿았다. 엄마는 겨울이 오기 한 두 주 전쯤 장롱에 개어놓은 두꺼운 솜이불을 꺼내 깨끗하게 세탁해놓은 홑청을 입혀 대바늘로 기우셨다. 본격적으로 추워지면 오방색이 비단처럼 반짝이는 그 이불로 무겁지만 따뜻하게 겨울밤을 보냈다. 찬바람이 거세지고 어둠이 더 짙게 내려앉으면 솜이불이나 발열 내의로도 해결이 안 되는 때가 온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뎅 솥을 꺼낸다. 솜이불의 시기에서 곰국의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게 밤낮으로 곰국을 마셔대다 보면 마침내 속도 따뜻해져서 오돌오돌 떨지 않고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엄마의 뜨뜻한 곰국이 먹고 싶다.     


한참 드라마를 보는 시간으로 건성으로 받을 거란 걸 알았지만,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요즘 곰국 끓이려면 얼마 정도 하지?

-(눈은 아마도 TV 화면에 고정ㅎ) 왜?

-갑자기 먹고 싶어서… 이상하게 생각남

-한우로 해야 해서 비싸지, 형부한테 물어볼까? (형부가 고깃집 하심)

-아,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 알겠어요 드라마 보세요~     


 비싸다. 짐작했지만 막상 엄마 입에서 비싸지- 라는 말이 나오자 선뜻 내가 살 테니 끓여달라고 하지 못했다. 최소 십만 원은 넘는 금액이 머릿속을 스쳤기에 생존하듯 사는 1인 가구인 나는 망설였다. 그렇게 며칠 곰국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투덜투덜 걷던 어느 날, 언니와 통화를 하는데 곰국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가 전화가 와선 집에서 곰국을 끓인다고 뼈 가격 묻더라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사 먹지 그걸 집에서 고생스럽게 끓이는 사람이 어딨노.

 하여튼 고생은 사서 하는 타입이다 정말. (절레절레)

-하.하.하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언니가 뭐라고 했다며? 하하하 나도 사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다 하하하

-오늘 뼈 온다고 해서 저녁에 끓일 거야

-응? 왜? 사서 먹음 되는데 그냥 한번 먹고 싶었던 건데 괜히 고생스럽게

-(한숨인지 숨인지 내뱉으며) 딸이 먹고 싶다는데 그럼 엄마가 가만히 있나 돈 주라 ㅎㅎ (마지막이 킬링 포인트 ㅎㅎ)      


 엄마의 마음이 솜이불처럼 나의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먹을 대로 나이만 먹고 여전히 철없는 막내딸을 늘 안타까워하고 아까워하는 우리 엄마. 역시 엄마밖에 없다. 역시 엄마 밖에 없다- 라는 입에 발렸지만 진심인 말을 하고 맛있게 곰국을 먹어야겠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이라도 좀 드려야겠다. 곰국 생각을 하니 아니, 엄마 생각을 하니 오늘은 그래도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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