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na Dec 29. 2020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리고 다시 보기

 다들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오늘은 넷플릭스에 따끈한 신상 한 편 봐볼까 하고 들어가선 기본 10분은 무엇을 볼까로 시간을 허비한다. 후보 몇 개를 고르고 나서도 그중 무엇을 봐야 후회 없는 시간이 될까로 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최종적으로 한 편을 선택하고 나면, 진이 빠질 대로 빠져선 그냥 다음에 보자- 하고 꺼버리고 만다. 어쩌다 그 순간을 잘 견뎌내고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것까지 가더라도 위기는 또 찾아온다. 넷플릭스 자체 제작이거나 내가 보지 못한 작품을 보게 되는 경우 처음 1분을 넘기지 못하고 뭔가 재미없을 것 같은 기운이 감지되면 이건 아니다 하면서 꺼버리고 만다. 


 끄고 또 끄고 끄다가 볼 일 다 보는 나. 시청 중인 콘텐츠가 넘쳐나니 누가 보면 열혈 시청자 되시겠다. 그러다 보니 넷플릭스와 조금 멀어진 사이였는데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오도 가도 못하고 숨 쉴 구멍조차 없어지다 보니 다시 넷플릭스님(?)을 찾게 되었다. 문제는 또 무얼 볼까로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그림이 그려지니 나는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내가 왜 이럴까 싶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가성비를 따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니까. 이건 삶의 질 문제다 라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신박한 결론에 이르렀다. 바로, 다시 보기     


 누구나 가슴속에 명작들 한두 편은 있는 거니까. (응?) 이미 검증된 작품들이다 보니 정지 버튼 누를 일도 없고 희미해진 기억력이 다시 보기를 통해 되살아나니 가성비 갑 중에 갑이다. 손가락의 리듬감이 살아난다. 머릿속에 명작들이 드르르르 지나간다. 무엇을 볼 것인가. 순간 멈칫하는데 친절하게도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나를 인도해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렇게 다시 내게로 왔다.     


 츠네오(남자배우 분)는 조제(여자배우 분)를 사랑하고 조제도 츠네오를 사랑한다. 하지만 주변인 모두가 그들을 연인으로 보지 않는다. 다리에 장애를 가진 여자, 마음의 빈 공간이 너무 많은 남자.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채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그들은 마주하게 된다. 그 흔한 ‘사랑한다 ‘는 말 한마디를 나누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들이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어긋날지언정 서로를 바라봐주는 시선 속에 사랑은 짙어져 간다. 어쩌면 좀 더 한 발짝  서로에게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여행을 시작했을까. 어쩌면 함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와 설렘은 옅어지는 마음과 차가운 일상들로 인해 조금씩 부서진다. 낡아버린다.      


 사랑은 왜 시작되는가. 사랑은 왜 끝이 나는가. 어찌 보면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영화는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화면 속에 멋들어지게 던져놓음으로써 당위성과 진정성을 불어넣는다. 진부함이 주는 진정성은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길 원하는 마음, 그것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조제는 다시 한번 내게 말해주었다. 그냥, 사랑하라고.   되돌릴 수 있는 건 고작 다시 보기 뿐이지만 그 고작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의 2020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2020년이 다 가기 전에 나는 또 다시 보기로 사랑도 보고 우정도 보고, 슬픔과 고통, 웃음과 기쁨들을 마주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곰국보다 따뜻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