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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Jan 22. 2021

프라이팬, 그게 뭐라고

 요리라곤 다때볶(다 때려 넣고 볶는 것)이 다인 나의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도구, 프라이팬이 수명을 다했다. 거의 매일마다 때려 넣고 볶다 보니 저도 지쳤나 보다. 어느 날부터 불을 높여봐도 재료들이 골고루 잘 익지 않고 기분상 맛도 떨어졌다. 아주 비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개중에 좋다는 것으로 샀는데, 그것도 크기가 1인 가구에 딱 맞는 것으로 샀는데, 뭐든 오래 쓰고 막 쓰고 많이 쓰면 늙는가 보다. 아쉬워 버리지는 못하고 그래도 새로운 친구는 찾아야 하니 인터넷도 뒤져보고 마트 갈 때마다 둘러보긴 하는데 그게 뭐라고 영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 단번에 사질 못한다. 너무 싸면 금방 쓰고 버릴 테고 그렇다고 비싼 건 왠지 과소비인 거 같다- 라는 두 가지 마음이 들어 매번 결정을 미룬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다른 마트에 가본다거나 새로운 쇼핑 앱을 찾아 시도하는 것도 아니면서, 프라이팬 그게 뭐라고 사질 못하는 내가 너무 궁상맞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오늘은 사야지, 오늘은 사야지 하던 게 일주일이 넘어가니 나도 지쳐서 그냥 먹질 말자 하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는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역시 급할 땐 엄마지. 집에 못 쓰는 프라이팬 없냐며 이차 저차 이렇다 하니 쿨한 엄마답게 바로 없다신다. 김장도 안 하시면서 김치냉장고는 꼭 있어야 한다며 턱 하니 들여놓으시고, 매일 먹을 게 없어서 물에 밥만 말아 먹는다는 엄마의 냉장고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꽉 들어차 있다. 옛날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잘 버리지 못하고 쟁여놓으신다. 그렇다고 찾지 못하는 건 아니고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 마치 자판기처럼 여기저기에서 쏙- 하고 툭- 하고 튀어나온다.      


 엄마의 자판기에 프라이팬도 있지 않을까. 꽁으로 얻자는 심보를 부리며 전화를 받자마자 안부도 없이 냅다 프라이팬 타령을 했는데 이번엔 꽝이다. 엄마가 없다고, 안된다고 하는 건 정말 없고 안 되는 거니까. 이번엔 기필코, 꼭,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또 며칠을 마음만 먹었다. 집에 고이 모셔놓은 프라이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아직 쓸만하다고 스스로를 달래는 중이었다. 갑자기 엄마가 책방에 한 번 오겠다기에 요즘 밖을 나가질 못하니 콧바람이라도 잠시 쐬러 오나 싶어 저녁에 같이 밥도 먹고 프라이팬도 보러 갈까 했는데 낮에 잠시 다녀가신단다. 일할 때 아는 사람이 오는 걸 썩 반기지 않는 나이지만 얼굴 본지도 오래되고 아픈 다리로 나온다는 건 많이 갑갑 하고 답답한 게 아닐까 싶어 조심해서 오라며 반겼다.      


 한 손엔 커다란 프라이팬과 한 손엔 싱싱한 광어를 넣고 끓인 미역국을 담은 비닐팩을 들고선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정말 좋은데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고- 자식이 뭐라고 저렇게 하나 싶어 이상하게 화도 나고. 한꺼번에 여러 마음이 들다 보니 인사하는 것도 잊고 짐만 받아 내려놓았다. 그러고 한다는 말이,     


 -아, 프라이팬이 너무 큰데?      


 도대체 나는 왜 이러는 걸까. 내 대꾸엔 신경도 쓰지 않고 광어 뼈를 손수 다 발라 넣어 부드럽고 시원하다는 미역국 이야기와 수술은 지겹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며 누가 그러는데 OO병원이 잘한다고 해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병원엘 굳이 가겠다는 협착증 이야기를 손님이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풀어놓으신다. 하지만 나는 광어 미역국도 엄마의 협착증도 귀에 담질 못하고 프라이팬의 크기가 신경 쓰여 저걸 쓸까 말까 한다. 내가 너무 말이 없자 하던 말을 멈추고 나를 보던 엄마는 결정타를 날린다.      


-그거 내가 다 씻어 온 거야

 -아, 응 색깔이 이쁘다 하하하   

  

나는 나의 작은 프라이팬을 매일 저녁 꺼낸다. 아직은 괞찮… 을지도.     


이미지출처-https://m.blog.naver.com/imimcj/221214098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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