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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Jan 28. 2021

1월의 요리는 호박전입니다

 먹을 줄만 알았지 치울 줄은 모르는 인간에서 어느새 치울 줄은 알게 된 성숙한(?) 36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요리는 할 줄도 할 엄두도 잘 내지 못한다. 요리는 내게 내 기분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고 익숙해지지 않는 세계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한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데 나는 내가 한 음식은 대접을 할 때도 잘 입에 대지 않는다. 살려고 먹는 것 말고 내가 하는 요리는 없다. 이런 악조건 속에 입맛은 또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건강하지 않다 싶으면 잘 사 먹지도 않고, 혼자선 밥을 못 먹는 사회성 결여의 태도까지 갖추고 있으니 굶어 죽지 않는 게 용하다 싶은데, 굶어 죽기는커녕 튼튼하다 아주 아주 많이.   

   

 늘 건강하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내면과 외면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면 좋겠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라고 하고 누군가는 패션과 외모에 신경을 쓰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한 번 사는데 그냥 되는대로 살라 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외적인 것에 있어 최소한의 취향을 가지려 노력한다. 또 되는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정신적인 안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자기 합리화에도 능숙해지고 있다. (…응??) 돈을 아주 쏟아부어야 가능한 분야 말고 내게 남은 미개척 분야는 요리뿐이고 괜히 새해를 핑계로 나는 결심을 했다.      


 호박전이다.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 먹고 싶었던 호박전. 부추전도 아니고 파전도 아니고 배추전도 아니고 늙은 호박전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엄마 집에 밥을 먹으러 간 날 호박전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삼촌 집에서 얻어온 호박을 채로 썰어 얼려 두셨단다. 아- 정말 엄마는 엄마다. 냉큼 챙겨 온 호박채를 얼려 두었다가 다시 먹고 싶은 날, 출근 전에 꺼내 해동시켜 놓았다. 집으로 가는 길,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달걀을 풀고 호박채를 적당량 넣고 소금을 탈탈 털어 넣고 섞는다. 그전에 프라이팬을 달구고 그전에 배고프니까 고기도 조금 굽고 그전에 빨래를 걷어버리고 그전에 불려놓은 미역 담을 통이 어딨더라??? 뭐가 이리 복잡한지 쓰고 봐도 정말 단순하기 그지없는 요리인데 나는 너무 바쁘다. 꺼내 놓은 호박채가 너무 많아 소분 하여 담고 먹을 만큼만 덜어야 하는데 얼마를 풀고 얼마를 빼야 할지 가늠이 잘되지 않는다. 맛없는 건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계량 같은 건 더 싫다. 달걀도 한 개론 부족하지 않을까 싶고 건강을 위해 밀가루는 넣지 않을 예정인데 과연 이것은 전인가? 부침 인가? 엄마가 호박이 원체 달다고 했는데 그래도 설탕을 조금 쳐야 그나마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소금은 왜 넣는 거지? 어쨌든 넣어야 할 것 같은데…     


호박전으로 상 탈 거 아니면 그냥 해라 해.     


 태워 먹지 않은 게 다행으로 고군분투 끝에 만들어진 나의 늙은 호박전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엄마의 말처럼 호박 자체가 맛이 있고 소금으로 단맛이 더 깊어졌는지 뜨끈하고 달달한 호박전은 입에 살살 녹았다. 천국의 맛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아- 사람들이 이런 맛에 요리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몇 분 안 돼 사라진 호박전처럼 그런 기분도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의미 부여하자면 요리는 사랑이 없으면 즐기기 어렵다. 나를 사랑하고 같이 먹을 사람을 사랑해야 맛있게 완성되는 세계다. 시간과 노력, 마음의 삼박자가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세 가지 조건에 있어 나는 다 부적합하다. 그럼에도 나는 2월의 요리를 벌써 마음속에 정했다. 아마 사랑이 필요하거나 건강이 필요하거나 어쨌든 절실한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러니 3월에도 4월에도 요리를 할 테고 아마 여름쯤엔 내가 생각해도 잘했다 싶을 만큼 뭔가 뚝딱뚝딱 만들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즐기고 있을 것이다. 자, 그리하여 2월의 요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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