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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Feb 16. 2021

당신을 건너는 방법


 좁은 건널목에서 차와 만났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을 내디뎠다. 누가 가르쳐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늘 사람이 먼저라고 배웠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차 안에서 운전하는 당신도 사람이지만 어쨌든 내 눈에 보이는 건 하얗고 까맣고 잿빛인 자동차일 뿐이다. 내가 내디딘 걸음만큼 자동차도 나를 향해 돌진했다. 길이 좁아 큰 사고는 아니었겠지만 우린 서로 크게 놀라 멈칫한 후 마주 보았다. 내 얼굴에도, 앞유리 안 멀건 그의 얼굴에도 미안함이라곤 아마, 없었을 것이다. 며칠 안팎으로 이런 일들이 빈번했다. 횡단보도라도 신호가 없으면 자동차들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는 놀라고 화가 나서 한참 그 자리에 서서 속도를 내며 떠나는 차 뒤꽁무니만 노려보았다. 반대로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나로 인해 왜 저 인간은 잠시 멈춰 주변을 한 번도 살피질 않나 하며 나를 노려 보았을 것이다.    

    

좁은 건널목에서 또 만났다.     


 나는 발을 내딛다 말고 뒷걸음질 쳤다. 며칠 전 일들이 떠올랐고 차를 먼저 보내고 가자 마음먹었다. 마치 아주 큰 양보를 하는 것처럼. 그런데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하필이면 자동차 안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그럼 먼저 갈까 하다가 내가 가면 이 차도 갑자기 움직이는 거 아냐- 하는 생각에 발이 떨어지질 않았고 차 뒤쪽으로 다른 차들이 줄지어 오고 있었다. 앞 유리 쪽으로 뭔가 휘적거리는 게 보였다. 그것이 운전자의 손짓이라는 걸 알았다. 얼른 지나가라고 나를 향해 손짓하고 아니, 내치고(?) 있는 손사래였다. 나도 모르게 괜히 고개를 푹 숙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과 같은 일 또한 며칠 안팎으로 빈번했다. 어김없이 차도 가질 않고 나도 가질 않고 서로를 기다리다 결국 눈빛을 주고, 손사래를 받고서야 종료되는 상황. 사람이 먼저라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거나 똑같이 사람이 먼저라고 나 아닌 서로를 너무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역지사지]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봄.     


 서로를 위한다는 것이 때론 불필요한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나를 알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화나고 슬퍼한다. 너무나 작은 일들에 너무나 빈번하게. 건널목 건너는 사소한 문제로 너무 거창하게 역지사지를 떠올린 건 사실, 길을 건너면서 느끼는 많은 것들이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과의 순간들을 함께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순간에 담긴 깊고 진한 마음들의 어긋남과 불편함들이 마치 길을 건너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로의 간격을 잘 지키려면 서로의 신호를 잘 알아야 한다. 그 신호를 기억하고 인정하고 어떨 땐 양보도 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잘 건너갈 수 있다. 요즘 나는 신호를 잘 보내지도, 잘 받지도 못하고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 멀리서부터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며 신호를 보낸다. 먼저 갈 것인가 나중에 갈 것인가 그리하여 서로가 잘 지나갈 것인가 가늠하며 잘 지나가자고 바래본다.





*이미지출처

https://search.pstatic.net/common/?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xOTAzMTFfNjgg%2FMDAxNTUyMzA4ODYwMDY1.mEsFK2ZkDolHO3SKEdzl2nQI5s3UmhclwxsCmOf1110g.ky7E6zPnkn-_nyk_9sprgwyY3vyop8tJlPwFQ75CEtkg.JPEG.third0135%2FIMG_3729.JPG&type=a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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