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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Mar 20. 2021

연애와 커피



 연극만 열심히 하며 생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줄 알았던 내가, 놀랍게도 연애를 시작했다. 놀랍다고 표현한 것은 같은 업계(?) 사람은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늘 집-학교-극단을 오가던 내가 다른 업계의 사람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업계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말은 연애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동의어였고, 어쩌면 평생 연애의 연자도 모르고 살 줄 알았는데, 그런 내가 원칙을 깨뜨리고 k와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K는 같이 연극 작업을 하던 동료였다.     


 연극 작업을 통해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피로감, 늘 혼자서 견뎌야 하는 학교생활 속 소외감을 그나마 희석시킬 수 있었던 것이 유일하게 커피를 마시던 시간이었는데 그것도 반복되다 보니 그 시간마저 견뎌야 하는 무엇이 되었다. 나 혼자만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것이 어쩐지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내게 k는 다가와 ‘개폼 잡지 말라’는 말로 수작을 걸었고,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가 개폼을 잡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동시에 이 사람 앞에서는 억지로 강한 척 멋진 척 뭔가 알고 있는 척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의 짐을 덜어내면서 그 수작에 기꺼이 넘어갔다.     


 사장이 아르바이트생들의 능력 고취를 위해 녹차 티백이 가득 든 녹차를 수시로 주는 통에 하루종일 잠을 자지 못한 신세계를 경험한 k는 카페인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커피도 녹차와 동일 선상에 두고선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유일하게 k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고 쓰기만 했던 아메리카노가 달달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시간이었으므로 짬이 나고 틈이 생길 때마다 카페를 배회했다. 엔제리너스, 탐앤탐스, 투썸플레이스, 스타벅스 등등 한창 체인 카페들이 줄지어 생기기 시작한 때였고, 너도나도 브런치 메뉴와 디저트 메뉴를 유행에 따라 똑같이 만들어내던 시절이었다. 여러 음료를 번갈아가며 마시던 k는 음료 맛들이 지겹고(?) 배가 고프다면서 빵이나 디저트를 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니 버터 브레드를 만났다.     


 말만 들어도 달달한 허니 버터 브레드는 네모난 통식빵에 몇 개의 가로와 세로를 그은 다음,   몇 개의 사각을 만들고 그 틈 다음 사이사이 시럽을 발라 굽고서 휘핑크림인가 생크림을 잔뜩 올려 함께 먹는 빵 디저트로, 자주 가던 탐앤탐스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영접했다. k의 선택이었지만 당시의 많은 선택권들이 나에게 있었으므로, 아메리카노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른 것뿐이었지만 그것이 중독의 시작이었다. 처음으로 접한 허니 버터 브레드는 정말이지 달콤하고 달콤하고 달콤했다. 특히 휘핑크림을 잔뜩 올려 빵과 한 입을 베어 물고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키면 그것은 헤븐(heaven), 천국이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나는 나도 모르게 점점 더 빨라졌다. 맛있는 허니 버터 브레드가 나오면 k와 이야기할 새도 없이 포크를 집어 들고 마치 사냥꾼처럼 허니 버터 브레드를 그야말로 집어삼켰다. 당시 연애 초기로 서로가 신비감을 어느 정도 양념처럼 쳐야 했음에도 허니 버터 브레드에 미쳐버린 나는 내 입에 양념을 치기 바빴고, 그는 그런 나를 사랑스럽게 보려 애썼다. 어느새 커피를 마시러 가자는 말은 허니 버터 브레드를 먹으러 가자는 신호가 되었고 k는 갈 때마다 매번 직원들에게 휘핑크림을 많이 얹어 달라고 부탁하거나 리필을 받아오는 과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걷다가 카페를 지나치거나 여러 디저트 메뉴들의 모형을 볼 때면 나는 허니 버터 브레드를 떠올린다. 그리고 k가 정말 사냥꾼 같았던 나의 모습을 되는대로 과장하면서 혀를 끌끌 차던 모습도 함께 떠올라 푸푸- 거리며 혼자서 웃곤 한다. 달콤했던 건 연애도 커피도 아니고 어쩌면 허니 버터 브레드였는지도 모르겠다. 연애도 커피도 첫맛은 달콤할지언정 언제나 끝 맛은 썼다. 하지만 연애도 커피도 하지 않고 마시지 않을 재간이 없었으니 내게는 꼭 허니 버터 브레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흩어지고 옅어졌지만, 여전히 나는 연애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또 다른 달큰함을 꿈꾼다.     




*이미지출처

https://m.blog.naver.com/helloyoun89/22016413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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